[문화산책]도서-편안함으로부터의 자유
[문화산책]도서-편안함으로부터의 자유
  • 관리자
  • 승인 2014.06.2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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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추계예술대학교 전자정보도서관 사서


몇 년 전이었던가, <시크릿>, <긍정의 힘> 등 성공학과 자기계발 관련 서적들이 광풍처럼 우리나라를 휩쓸던 때가 있었다. 아마 2000년대 중반이었나, 주5일근무제가 시행되는 기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도 그때의 트랜드에 부나비처럼 뛰어들어, 이제는 유행이 된 스토리텔링 방식의 베스트셀러를 몇 권이나 연거푸 탐독했었다. 그리고‘성공’과‘긍정’같은 단어에 쉽게 도취되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삶은 책에 씌어 진 것처럼 간단하지도, 그리 녹록치만도 않다. 머지않아 나를 포함한 다수의 평범한 독자들은 책에서 말하는 간결한 방법론과는 달리 하루하루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하는 지난한 현실을 마주하고는 아마도 애인에게 배신당한 기분으로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그 후 간격을 두고 이런 책 제목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책들도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긍정의 배신>,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피로사회> 등이 그것이다. 이 책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인문학적으로 묵직한 맛이 느껴지는 교양서이기도 했지만 시류에 대한 역기능을 파헤치고 이상과 현실 사이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하는 관점의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인문교양 분야의 신간, <편안함의 배신>이다.

혹시 오래 전에 좋아했던 영화나 책을 다시 꺼내 보는데, 지루할 정도로 진행이 느리고 극적인 부분까지 흘러가는 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까? 아니면 이제는 인터넷에서 긴 기사나 블로그를 끝까지 참으며 읽기가 너무 힘들고, 누가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주었으면 싶을 때는 없는가?
‘편안함에 대한 배신이라… 문명은 인류의 편안함을 위해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편안함의 배신>이라니. 무슨 내용일까’하며 의문을 가지고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편안함의 배신>은 이런 질문들과 함께‘편리한 것들은 어떻게 내 삶을 마비시키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부제로 시작한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빨리빨리 전달되기를 바라게 되었을까?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주의 지속 시간이 짧아졌으며 왜 우리는 모든 것이 편리하게 전달되지 않으면 짜증을 내거나 지루해하고, 아예 귀를 닫아버리게 되었을까? 예를 들면 지하철에서 와이파이가 빨리 터지지 않으면 짜증나고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답변이 빨리 오지 않는다며 스마트폰을 열 번도 넘게 쳐다보게 되는 것들 말이다. 심신의학을 연구하는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경향은 우리 예상과는 달리 스마트폰과 노트북이 아닌 전자레인지의 발명, 그리고 패스트푸드와 가공음식의 인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그와 같은 현대사회의 기술발전이 인간의 모든 충동을‘즉각적으로 충족’되도록 길들이게 되면서 우리는 편안함에 빠르게 중독되어갔다는 것이다. 편안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환경에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불편에 대한 내성이 낮아져 이제 아주 작은 불편에서조차 위협을 느끼게 된다. <편안함의 배신>은 원시시대의 생존을 위한 방법으로‘편안’을 추구했던 순기능적‘생존본능’이 현대에는 역기능으로 작용하여 사소한 불편도 견디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우리는 삶에서 더욱 광범위하게 습관화된 불행과 불편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편안함의 배신으로 우리는 항상 감정적인 흥분상태에 있으며 가벼운 불편에도 쉽게 생존본능이 발동하여 분노하는 등 평범한 사람들도 불안과 우울 증세를 겪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편안함의 배신>이 재미있는 것은 문제를 야기하는 이 불편함이란 녀석을 제거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것이라고 설득하는 관점에 있다. 사는 동안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현실 속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편안함을 추구하는 본능과 함께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오히려 불편은 우리의 삶을 더 긍정적이고 풍요롭게 만드는 도전과 경험이라는 자극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하면서 우리의 뇌가 불편을 불편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도록 관리하는 전략과 불편을 힘의 원천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편안함의 배신>은 어쩌면 우리의 생존본능을 의도적으로 시험하려는 듯‘편안함은 양의 탈을 쓴 늑대다’라고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을 장장 책 분량의 반을 할애하여 여러 심리학적, 병리학적 연구사례를 거론하면서 차근차근 반복적으로 기술하고 있다.‘거봐, 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해서 읽으려니까 지겹고 불편하지? 하지만 반복과 심층적 분석이라고 할까, 이렇게 충분히 숙고하는 시간이 없이는 어떤 이야기도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 수 없어’라고 나의 가벼운 생존본능에 대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책을 덮으면서 상대 또는 그의 태도를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것도 이렇게 반복적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불편을 감내하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제대로 알 수 없는 거구나, 그리고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 없는 거구나 체감하며 깨닫게 된다. 문득 대화중에‘여보, 내말 듣고 있어요? 당신은 항상 내말을 하나도 듣지 않고 있다니까…….’라며 불평을 부리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라 뜨끔했다. 항상‘그래서 하려던 말이 뭐야, 장황하게 설명하지 말고 간단하게 핵심만 말하라고’속으로 얘기하던 나였는데. 오늘도 시큰둥한 나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지치지 않고 내게 말을 걸어 올 아내를, 오늘 밤부터는 제대로 이해해 볼 참이다.


2014/06/21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