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여성의 단축 근무가 가능한 기업 문화
임신한 여성의 단축 근무가 가능한 기업 문화
  • 관리자
  • 승인 2014.10.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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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경
(주)나스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터키정부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대표
(사)IT여성기업인협회 부회장


미국 최초의 여성대법관을 지낸 산드라 데이 오코너는 1930년생으로 20대 초반에 스탠포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재원이었다. 애리조나 주 법무장관실에서 일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던 그녀는 결혼 후 아이들을 출산한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하면서 살림을 병행해야 했다. 셋째 아이를 출산한 1964년 말, 오코너는 결국 아이들 양육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근무 시간을 3분의 2로 줄이는 대신 봉급은 절반만 받기로 한 것이다. 선각자적인 그녀의 결단과 성공 사례는 미국 법조계에서 최초의 ‘파트타임’근무 형태가 시작된 계기가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했지만 그녀는 결코 일을 놓지 않았고 세월이 흘러 마침내 1981년,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이 되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여성들의 출산과 육아휴직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고 이를 당연시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 고용 관련 제도는 매우 열악하였지만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으며 발전해 왔다. 특히 이번 박근혜정부 출범이후 핵심 국정과제인 ‘고용률 70%’를 내세우며 엄청난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듯하다. 핵심키워드는 ‘시간 선택제 일자리’와 ‘여성고용 활성화’에 들어있다. 최근 발표된 후속대책에는 영유아·초등기 자녀에 대한 보육·돌봄사업 등 여성들이 마음 놓고 경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와 경력단절여성 재취업, 임신·출산기의 모성보호, 여성친화적 고용문화 개선 등의 지원 정책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출산 이후 근무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뛰어넘어 이제는 자녀 양육 뿐 만 아니라 임신 기간 중에도 산모를 배려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지난 9월 25일부터 적용된 근로기준법 제74조(임산부의 보호)의 ⑦~⑨항에 따라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임신 12주 이내, 그리고 36주 이후인 임신 여성 근로자의 경우 편리한 시간 2시간씩 근무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임신 전 기간이 아니라 유산 위험성이 높은 임신 초기 석 달 사이, 조산 위험이 높아지는 36주 이후에만 해당되는데 출근을 두 시간 늦춰도 되고, 퇴근을 두 시간 빨리해도 된다. 물론 근무시간 중 두 시간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출근을 한 시간 늦게, 퇴근을 한 시간 빨리하는 등 원하는 대로 맞춰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300인 미만 중·소규모 사업장은 2016년 3월부터 적용된다.

임신·출산에 친화적인 근로환경을 조성하여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엿보인다. 더 긍정적인 것은 일하는 시간은 줄어들지만 임금은 줄일 수 없도록 했고 이를 어기는 사업장은 500만원의 과태료를 내도록 강제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제도의 시행을 두고 여성계에서는 우선 임신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는 점에서는 환영한다고 하면서도 그 실효성에 대해 미심쩍어 하는 분위기다. 당장 임신한 여직원들이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 편히 단축근무를 신청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현실적으로 임신부의 근무시간 단축 청구에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임신부가 회사에 직접 청구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부담감이 발생할 수 있고 2시간 적게 일 하면 옆의 동료가 대신 한다거나 8시간의 업무량을 6시간 내에 다 소화해 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업무량은 줄일 수 없고 대체 인력지원이 없다면 단축근무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결국에는 임신한 여성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또한 기업이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되어있지만 미봉책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기업이 스스로 이 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접근 방법을 제시하고 이를 따르도록 강제하는 특단의 조치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잘 갖춘 국가일수록 사회적 비용이 줄어든다. 출산, 육아 등으로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면 다시 취업할 경우 임금손실, 과잉 투자된 고등교육비용, 재교육을 위한 직업훈련비 등 다양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고용환경이 임신과 출산, 육아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출산율이 낮아지고 결국은 인구 감소로 인해 노동력이 줄어들어 고용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지금 당장의 이익보다 미래를 내다보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기업들이 먼저 탄력적인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제공하고 고급여성인력들을 근로 현장으로 이끌어내 경쟁력을 높여나가야 한다. 여성들은 또한 임신, 출산, 육아기를 거치는 동안 탄력적 시간 선택제의 수혜를 최대한 활용하여 자기계발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고용문화를 바꿔 나가야 할 때다.



2014/10/25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