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영화<5일의 마중>
[문화산책]영화<5일의 마중>
  • 관리자
  • 승인 2014.10.2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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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추계예술대학교 전자정보도서관 사서


이십대 이후로 혼자 영화를 본 적이 있었던가. 실로 오랜만에 관객도 거의 없고 좌석도 낙낙한 강남의 한 영화관에서 오로지 영화와 나, 혼자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영화 <5일의 마중>을 보고 나오는데 그 여운 때문인지 차가운 가을바람이 유독 가슴을 휘잉휘잉 내리친다. <5일의 마중>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누구나의 삶에 유일한 증인이자 늘 곁에 있는, 그래서 순간 잊고 마는 사람, 바로 ‘당신’을 만나게 되는 드라마라고나 할까. 공리와 거장 장예모 감독이 7년 만에 다시 만났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스티븐 스필버그가 보면서 1시간 동안 울었다는 그 내러티브, 영화 <5일의 마중>을 지금 만나러 간다.

<5일의 마중>은 어두운 내일을 예감하듯 시작하자마자 날카로운 기차소리와 냉랭한 빗소리가 화면 가득히 넘쳐난다. 그 속을 뚫고 주인공 루옌스가 누군가에게 쫓기며 바삐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중국 문화대혁명(1966년~1976년) 시절, 수년 전 루옌스는 지식인으로서 반혁명분자로 몰려 강제수용소에 투옥되었었다. 아내 펑완위와 3살배기 딸아이를 남겨둔 채였다. 그는 지금 수용소를 탈출하여 목숨을 걸고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집 앞에 당도한 루옌스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내와 마주하게 되지만 당의 삼엄한 감시 때문에 ‘내일 아침 기차역에서 만나자’는 쪽지만을 가까스로 전달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다음날 10여년 만에 펑완위와의 조우를 눈앞에 둔 루옌스, 하지만 이마저도 결정적인 순간에 딸에게 고발되어 다시 감옥으로 끌려가게 된다. 몇 년 후 문화대혁명이 실패하고 무죄로 석방된 루옌스는 가족을 만난다는 벅찬 마음을 안고 돌아오지만, 어찌된 일인지 펑완위는 그토록 기다리던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펑완위는 ‘곁에 있는 루옌스’를 마중하러 매월 5일 아침, 기차역으로 나선다.

주인공 루옌스가 마주했던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이 주도한 극좌적 사회주의운동으로 중국공산당 내부의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권력투쟁이었다. 당시 수많은 지식인들이 계급의 적으로 몰려 숙청당하고 청소년들은 홍위병이라는 이름으로 선동되어 희생당했다. 이런 집단적 광기가 사회를 지배하는 동안 중국은 경제적 침체는 물론이고 최소한의 인간관계마저 파괴되어 ‘가족’조차 믿지 못하는 비극적인 시절을 겪었다고 한다.

영화 <5일의 마중>이 좋았던 건 극단적인 시대를 통해 휘둘리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원초적인 물음이랄까, 뭐 그런 것들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어서였다. 그 물음이란 ‘시대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읽힐 것인가’, 그리고 ‘당신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나는 과연 누구일까’ 하는 것이었다. 격동하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루옌스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우리는 누구나 사회적으로 부여된 여러 가지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혼자서 살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부모, 부부, 자녀, 직장인, 학생, 선생, 지식인 등등의 역할들 안에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고 어떤 존재인지를 증명하게 된다. 그런데 루옌스처럼 여러 역할 중에 ‘정치적 신념’ 하나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도록 시대에 의해 강요받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해야하는 이율배반적인 역사적 현실이 안타까웠다. 루옌스는 만약 다시 돌이킬 수 있다면 그 신념을 버렸을까.

<5일의 마중>에서 사실 가장 마음을 울렸던 부분은 집으로 돌아온 루옌스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아내에게 필사적으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애잔한 장면들이었다. 사회라는 불가피한 세계 안에서 ‘나’는 내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맥락에 따라 결정되고 규정된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만일 나를 둘러싼 당신이라는 거대한 세계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과연 나는 누구일까’, ‘당신의 의식에서 사라진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서 무엇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하는 물음이 영화를 보고 난 직후 한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그래서 루옌스는 펑완위의 사랑을 다시 얻게 되었을까? 이 영화는 어찌된 영문인지 보고난 이후에 여운이 더 짙다. 가을을 타나보다. <5일의 마중> ost 속에 흐르는 중국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랑랑의 피아노 선율이 눈에 보일 듯 밀도 높게 마음을 때린다. 찬 가을비가 내리는 오후에 듣고 있노라면 루옌스의 사라진 사진처럼 마음이 엷어진다. 점점 투명해진다.



2014/10/25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