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부부의 인터미션이 필요하다
[오피니언] 부부의 인터미션이 필요하다
  • 관리자
  • 승인 2016.10.0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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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
가족생태학자, 하이패밀리 대표
건강가정시민연대 공동대표


뻔하다. ‘다시 결혼하게 된다면 지금의 배우자를 선택하겠느냐고?’ 배우자를 앞에 두고 뭐라고 답할까? 질문이 뻔하니 답도 뻔뻔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이더러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과 뭐가 다른가? 아이가 답한다. ‘응, 엄마는 맛있는 거 사 줘서 좋고, 아빠는 나하고 놀아줘서 좋아.’ 요새 아이들은 영리하다. 어른들이 답한다.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살 거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미쳤어? 너 하고 살게.’ 그래서 어른들은 사악하다. 내 친구는 지금의 배우자를 다시 선택한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이유를 물었다. ‘다른 여자하고 또 적응해 살 것 생각하니 끔찍해서’란다. 내 친구는 차라리 정직하다.

그런데도 뻔한 질문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뭘까? 일어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껏 상상한다. 로또 복권을 사 들고 ‘당첨이 된다면’ 하고 온갖 상상에 빠질 때처럼 황홀해서다. 그런데 그 가정법이 일어나고 있다. 평균 수명이 60에 머물던 시대는 먹고사는 일에 바빴다. 생계에 쫓기다 허리를 펴면 바로 눈앞에 죽음이 와 있었다. 내일모레 죽을 사람이 자기계발이니 미래의 꿈이니 따위의 사치스런 생각이나 했겠나? 더더구나 부부관계는 봄의 목련이 그렇듯 팝콘처럼 피어났다 바나나 껍질처럼 새까맣게 썩어갔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90에 육박한 이즈음에는 달라졌다. 평균 은퇴 연령인 57세에 3년을 보너스로 얹어 60부터 카운트를 한다 해도 90까지 한 세대를 더 살아야 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하고 물었던 30년 세월이 눈앞에 와 있는 셈이다. 뭘 멀고살 거냐는 염려에 앞서 또다시 한 여자와 남자로 살아가야 한다. 어떤 이에게는 축복이고 어떤 이에게는 저주가 될 게 틀림없다. 오죽하면 ‘재수(?) 없으면 100살’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처칠은 어느 날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처칠은 옆에 있던 아내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답한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전, 제 아내의 두 번째 남편이 될 것입니다.’ 그 두 번째 결혼이 눈앞에 와 있다. 그것이 강제이건 선택이건 이전의 방식으로는 결단코 ‘NO’다. ‘ON’으로 뒤집지 않고는 절대 불가다. ‘성질부릴 만큼 부려놓고 뒤끝은 없다고. 그래 거기다 뒤끝까지 있으면 어떡할 건데. 한번은 몰라도 두 번은 안 돼’ 어디 아내들뿐이랴. ‘변덕스러운 성질에다 미련 곰탱이 같은 당신 비위 맞추고 또 살라고. 한 번 속지 내가 두 번 속나?’

세월이 더한다고 부부 사이가 깊어질 리 없다. 나이 먹는다고 저절로 행복해질 리도 없다. 자식들 키우고 먹고 사느라 바빴던 세월, 이제는 소진된 사랑을 보충해야 한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급유 없이 장거리를 떠날 수 없지 않은가?

축구의 ‘하프타임’이 있다면 연주회에는 ‘인터미션’(intermission)이 있다. 연주회 중간의 15분에서 20분가량의 휴식시간을 이른다. 연주자들은 한숨 돌리며 마음을 다잡아 다음 연주를 준비한다. 청중들은 커피 등 음료를 마시며 연주회 평을 나누고 다음 연주를 기다린다. 전통적으로 1부에서는 서곡 비슷한 짧은 관현악곡 하나쯤, 2부에서는 교향곡이나 비중 있는 관현악곡 하나로 구성된다.
부부를 일러 ‘실과 바늘의 두 악장’이라 한다. 1막이 brillante(브릴란테-화려하게)로 연주되었다면 2막은 amabile(아마빌레-사랑스럽게)로, 1막이 confuoco(콘푸오코-정열적으로)로 구성되었다면 2막은 grazioso(그라치오소-우아하게)로 거기다 dolce(돌체-부드럽게 달콤하게)가 가미된다면 부부 협주곡은 그야말로 환상일 게 틀림없다. 살림살이의 첫 악장이 끝났다면 2악장은 보람 살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길고 긴 연주를 인터미션 없이 계속한다면 얼마나 지루하고 또 피곤할까? 인터미션이란 inter에 mission이 합쳐진 말로 서로의 결혼생활을 돌아보고 위로하는 중간 마디다. 불협화음을 막기 위해 느슨해진 악기를 조이고 연주할 곡을 훑어보는 시간이다. 다음 연주를 위해 몸가짐을 추스르고 무장할 시간이다.


‘이 세상 모든 부부는 자신의 사랑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사랑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부부는 사랑의 증표로 약속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약속을 증명해 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부부는 약속을 지킬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미처 지키지 못한 약속을 위해 두 번째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이런 미션(mission) 하나면 또 한 번 주어진 결혼, 해볼 만하지 않은가?


2016/10/1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