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아버지 성적표
[오피니언] 내 아버지 성적표
  • 관리자
  • 승인 2016.12.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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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큰아들, 큰 며느리에게!
오래가면 안 되는데?
전화하기도 그렇고, 아버지 건강도 안 좋고 문자도 안 되고 이것저것 안 되고
너도 집에 안 오고
그런다고 그냥 있어서도 안 되고
그래서 편지로 알린다.

돈을 빌려주었으면 좋은데 너도 좋고 나도 좋을 텐데
빌려주지 못했으니 너도 기분 안 좋고 나도 기분이 안 좋구나.

아버지,
한 번으로 족했는데...... 제가 큰 죄를 지었어요.
몇 년 전, 누가 3억 원을 주겠다 약속하고 부도를 내는 바람에
사채 빌려 쓰고도 모자라 빚 독촉에 시달리고
인부들은 깽판을 쳐 할 수 없이 아버지에게 울먹거리며 매달렸지요.
살고 있는 전세금을 담보로 돈을 빌리러 찾아간 은행
팔십 넘어선 노친네는 자식의 보증이 있어야 대출도 가능하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은행 문을 나서며 ‘나도 이제 갈 때가 되었구나.’ 하고 자조 섞인 넋두리를 뱉으셨지요.
자신 있고 당당하던 아버지에게서 가장 슬픈 말을 듣던 날, 많이 울었어요.
아버지의 비감 어린 말에 많이 울고 또 울었지요.
다시는 그런 슬픈 가슴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는데
또다시 자금압박에 쫓겨 혹여 돈 좀 빌려줄 수 있냐는 한 마디가
아버지를 또다시 슬픔에 잠기게 했네요.

전세금 – 3억 5천
생계형 저축 – 1억(아버지 5천, 어머니 5천):65세 이상, 장애인
예금은행 – 새마을 금고(2금융권) : 연이율 2.5%(일반 은행보다 1.0% 정도 높음)

이미 천국교복 수의(壽衣)까지 준비해 너희들 신세 질 일 없게 해두었다더니
평생의 결심 그대로 지켜내신 듯
뜻밖에 받아든 아버지의 인생 성적표가 경이롭기만 합니다.
누가 뭐래도 아버지는 말 그대로 참 잘 사셨네요.
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노벨 경제상은 아버지 몫이 맞네요.
고맙습니다.

‘착한 전립선암(癌)이라 암으로 죽게 될 15년이나 자연수명으로 돌아가실 15년이나 그게 그거니......’
성의 없는 의사의 무심한 말로 사형선고를 받은 지도 벌써 몇 년
청란교회에서 가든 콘서트 열리던 날
목사 자식놈의 일이 자랑스러워 피붙이 형제들은 다들 바쁘고 아프다 내뺐어도
대상포진에 성한 곳 없이 퉁퉁 부은 다리 감춘 채
행사장 자리 지키며 아들을 지켜보다 어머니 손 잡고 높은 산 내려오셨지요.

‘너희들에게 편리를 못 봐준 아버지의 괴로움과 아픈 마음을 둘 곳이 없구나!’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한 마디가 수십억을 기부받은 것처럼 제 마음 훈훈하게 합니다.
이미 적금 통장을 깨 천만 원의 거금으로 기부운동에 기름을 부어 주셨잖아요.

아버지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학교에서 쫓겨나고 사람들로부터 배신당해 홀로 울 때
그 마음 알고 차마 목사는 욕지거리도 못 할 거라 대신 퍼부어 주시던 아버지의 분노가 치유였다는 말 이제야 꺼냅니다.
버티는 자가 이긴다는 말처럼
이제 한 두어 달 버티면 걱정하던 양평 W-zone도 완공될 거예요.
그때 다시 오셔서 아들이 해낸 일 자랑스러워하시고 단상에 앉아
‘내 아들이 해냈소.’ 하고 소리치세요.




2016/12/18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