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돌보는 60대 요양 보호사···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
60대 돌보는 60대 요양 보호사···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
  • 서한결 기자
  • 승인 2020.02.2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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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방문해 어르신 돌보는 8년 차 ‘재가 요양보호사’ 윤명희 씨
"명절 음식 시키는 등 가사도우미처럼 생각하는 사람 많아"
요양보호사 윤명희 씨는 노인의 집에 방문해 설거지를 하는 것부터 일을 시작한다.  (사진=서진솔 기자)
요양보호사 윤명희 씨는 노인의 집에 방문해 설거지를 하는 것부터 일을 시작한다. (사진=서한결 기자)

올해로 64세가 된 윤명희(가명) 씨는 노인의 집을 방문해 돌보는 일을 하는 8년 차 ‘재가 요양보호사’다. 윤 씨는 작년 12월부터 그와 같은 해에 태어난 주영식(가명) 씨를 돌보고 있다. 주 씨는 장애 3급 판정을 받은 기초생활 수급자다. 14살 때 뇌경색으로 처음 쓰러져 이후 뇌출혈까지 진행돼 98년도에 장애 등급을 받았고 지금은 몸의 오른쪽 전반에 마비가 왔다.

윤 씨는 주 씨의 집에 도착해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에 먹은 식기를 설거지하는 것부터 일을 시작한다. 몸이 불편한 주 씨가 할 수 없는 집안일을 해주고 대화 등 정서 지원을 하며, 주 씨와 함께 산책하거나 필요할 때 병원을 가는 것이 그의 업무다.

주 씨의 집은 윤명희 씨가 처음 왔을 때 놀랐다고 할 정도로 비좁다. 윤 씨는 일할 때 좁아서 숨이 막힌다고 표현한다. 4평 남짓한 원룸 형태의 집 한쪽에는 의료용 침대가 설치돼있으며, 침대 위에는 약봉지가 종류별로 가지런히 놓여있다. 침대 옆엔 환자들이 일어날 때 붙잡고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봉’ 모양의 보조 의료기구가 자리 잡고 있다. 침대 맞은편엔 한 칸짜리 옷장과 빌려 쓰는 TV가 있고, 싱크대와 냉장고가 나란히 붙어있는 조그만 부엌이 방과 곧바로 연결돼있다.

주영식 씨의 집은 LH가 시행하고 있는 기초생활 수급자 전세 지원 제도를 통해 보증금의 95%를 지원받아 계약했다. 주 씨가 말했다. “장애인협회가 있어서 예전보다 (지원이) 많이 좋아졌지. 매달 기초수급비 67만원 주고 복지관에서 김치, 쌀, 라면 보내주고 명절엔 센터에서 떡, 김치 주고 전기세도 무료야. 6년마다 (전동) 스쿠터도 바꿔주고 요양사도 도와주니까 살만해.”

설거지부터 화장실 청소까지

윤명희 씨는 설거지, 화장실 청소, 식사 준비, 방 청소 순으로 일을 이어간다.  (사진=서한결 기자)
윤명희 씨는 설거지, 화장실 청소, 식사 준비, 방 청소 순으로 일을 이어간다. (사진=서한결 기자)

설거지를 마친 윤명희 씨는 청소를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주영식 씨는 팔다리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기 때문에 청소, 설거지, 빨래, 목욕 등에 어려움이 있다. 목욕은 1주에 한번 장애인복지관에서 복지사들이 도와준다. 윤 씨는 성인 2명이 들어갈 정도 크기의 화장실 벽과 바닥을 수세미질 하는 것으로 청소를 마무리했다.

이어 윤 씨는 주 씨의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주 씨가 식사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은 뉴스를 보며 코로나19 현황과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노인과 대화 하는 것도 정서 지원의 한 부분이다.

식사를 마친 주 씨는 화상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야 한다며 나갈 채비를 했다. 마비돼 감각이 없는 오른발이 자는 동안 전기장판에 화상을 입을 때까지 몰랐던 것이다. 그가 전동스쿠터를 타고 혼자 병원에 가자 윤 씨는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윤명희 씨는 물건을 함부로 정리하면 안된다고 경고했다. 주 씨가 찾는 물건이 안 보이면 역정을 내기 때문이다. 전에 일했던 요양보호사가 청소하면서 몇 차례 물건을 함부로 정리한 것 때문에 주 씨가 화를 내며 센터에 다른 요양사로 바꿔달라 요청했고, 이후 윤 씨가 오게 됐다. 

윤 씨는 오후 3시면 모든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놀면서 손주 보는 친구들이 일하지 말라고 하지. 그래도 나는 즐겁게 생각하고 일해요. 무릎 아프고 힘들 때도 있지만 집에서 놀면 뭐해. 마음으로는 75살까지 하고 싶지만 5년만 더 하고 복지관 다녀야지”

“60살 넘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윤명희 씨는 일을 마치며 여러 고충에도 60대에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며 75살까지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서한결 기자)
윤명희 씨는 일을 마치며 여러 고충에도 60대에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며 75살까지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서한결 기자)

윤명희 씨는 전업주부로 생활하다가 2013년 8월 주변 지인의 추천으로 교육을 이수하고 요양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처음 2년은 요양원에서 일했다. 

그는 노인의 집을 직접 방문해 돌보는 직업 특성상 요양사를 가사도우미처럼 생각하는 노인이나 보호자가 많다고 전한다. 방문요양센터는 재가 요양사를 파견하기 전, 노인과 보호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한다.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나 사적인 집안일을 요양사에게 요구하면 안 된다는 등의 내용이다. 그러나 교육의 효과는 크지 않다.

“일하다 보면 (어떤 노인은) 당신이 다 할 수 있으면서 온갖 집안일에, 명절에 만두 빚는 거까지 시킨다니까. 이런거 시키면 안 되는 거라고 말해줘도 (기본적으로) 가정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럼 이번만 해주는 거라고 하고 어쩔 수 없이 해주지”

또, 보호자들이 나이를 물어보는 경우도 많다. 한번은 별다른 이유 없이 일한지 하루 만에 다른 집으로 보내졌는데, 이후 보호자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윤 씨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요양원에서 일할 때도 많은 나이가 걸림돌이 됐다. 윤 씨는 “야간 근무도 힘들었지만 결국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정년 얘기하면 나갈 수밖에 없다"며, "(요양원에서) 젊은 사람들 쓰려고 한다는 거 (일하는 사람들도) 다 알고 있다. 어디 가서 청소를 하려고 해도 60살 넘으면 쓰려고 하질 않는다”고 설명했다.

윤 씨는 올해 기준, 주휴 수당 포함 시급 1만 900원을 받는다. 재작년까지 하루 4시간씩 일했지만, 작년에 최저 임금이 크게 상승하고 센터에서 3시간으로 줄였다. 결과적으로 월급은 줄어든 셈이다. 

“내 나이에는 (요양사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어. 좋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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