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세 청소 노동자의 한탄, 직원들 갑질에 "우리는 소모품이에요"
63세 청소 노동자의 한탄, 직원들 갑질에 "우리는 소모품이에요"
  • 서한결 기자
  • 승인 2020.03.31 16: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시 30분까지 출근해 4시간 동안 휴식 없이 노동··· 600평 사무실 2곳 청소
서울 중구 A 빌딩에서 미화 노동자로 근무 중인 57년생 서윤희 씨가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다. (사진=서한결 기자)
서울 중구 A 빌딩에서 미화 노동자로 근무 중인 서윤희 씨가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다. (사진=서한결 기자)

서울 중구 A 빌딩에서 미화 노동자로 근무 중인 서윤희(63세·가명) 씨는 오전 5시 30분부터 일을 시작해 휴식시간인 오전 9시 30분까지 엉덩이를 붙일 수 없다. 잠깐이라도 앉아있는 모습이 소속 업체 미화팀장 눈에 띄면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후 경위서까지 작성해야 한다.

이는 해당 빌딩 사무실 직원들의 불만 전화가 총무과에 접수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이 청소가 미흡하다며 총무과에 전화하면 총무과는 업체 관리소장에게 보고하고, 소장은 다시 미화팀장을 호출한다. 소장에게 타박을 듣고 온 60대 초반의 팀장은 60대 초중반의 미화 노동자들에게 고함을 지르며 잘못을 지적한다.

서 씨는 “(팀장이) 소장한테 혼나고 오면 와서 악을 쓰는데, 인간 취급 못 받는 느낌이에요. 조금만 잘못해도 바로 짜른다고 협박하면 그냥 죄송하다고 해요. 나이 때문에 (다른 일할 데가 없어서) 그만둘 수가 없죠”라고 한탄했다.

팀장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 드는 미화 노동자가 있으면 정신적, 육체적 압박을 가해 그만두게 한다고도 전했다. 일하기 힘든 공용 구역을 담당하라는 식이다. 팀장의 압박에 못 이겨 작년 10월 미화 노동자 6명이 단체로 퇴사했다.

서윤희 씨가 4시 30분 출근해 사무실 한 층에서 수거한 쓰레기 모습이다. 서 씨는 매일 두 개 층의 사무실 쓰레기통을 비운다. (사진=서한결 기자)
서윤희 씨가 4시 30분 출근해 한 층에서 수거한 쓰레기 모습이다. 서 씨는 매일 두 개 층의 사무실 쓰레기통 300개를 비운다. (사진=서한결 기자)

오전 6시인 출근 시간보다 더 이른 시간에 출근해야 하는 것도 서 씨가 느끼는 부조리 중 하나다. 사무실 직원들은 그들이 출근하는 8시까지 사무실 청소가 마무리돼 있지 않으면 총무과에 불만 전화를 한다. 2시간 안에 사무실 청소를 끝내기 어려운 노동자들은 이에 못 이겨 5시 30분까지 출근해 일을 시작한다.

또, A 빌딩 여성 청소 노동자들은 한 달에 한 번, 남성은 격주로 주말에 하루 출근하는데 이에 대한 임금은 지급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소속돼있는 업체는 일할 사람은 많으니 불만 있으면 그만두라는 식이다.

서 씨는 사무실 직원들의 갑질도 힘든 부분이라고 전했다. 그는 “본인들은 마스크 안 하면서 우리 일하면서 마스크 안 했다고 (총무과에) 전화해서 엄청 혼났어요. 일하면서 열나니까 잠깐 벗은건데... 한번은 엘리베이터 바닥 청소하는데 한 명이 자리에 서서 한 발자국을 안 움직이더라고요. 투명 인간 취급이죠”라고 말했다.

이어 총무과에서 변기가 막혔다고 알려오면 담당 미화 노동자는 밥을 먹다가도 변기를 뚫기 위해 화장실로 올라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윤희 씨는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촉탁직 노동자다. 불안정하고 부조리한 고용은 같이 일하는 동료 직원들과의 갈등으로도 이어진다. 그는 “36명은 용역 직원인데, 3명은 직속이라 월급을 30만 원 더 받아요. 단합이 안 되죠. 계약 연장 안 될까 싶어 회사에 잘 보이려고 같이 일하는 사람 고자질하고, 그러면서 서로 일 미루고. 의지할 수가 없어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오전 4시 30분에 출근하는 '새벽을 여는 사람들'

A 빌딩 청소 노동자들이 한 명씩 격리돼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는 비품 창고 모습이다. 서 씨는 콘크리트 바닥에 박스와 돗자리를 깔고 이용하고 있다. (사진=서한결 기자)
A 빌딩 청소 노동자들이 한 명씩 격리돼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는 비품 창고 모습이다. 서윤희 씨는 콘크리트 바닥에 박스와 돗자리를 깔고 이용하고 있다. (사진=서한결 기자)

서윤희 씨는 4시 30분에 출근하는 '새벽을 여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조조할인이 적용되는 버스에 오르면 같은 지역의 미화·경비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

서 씨는 도착하자마자 사무실 개인 책상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부터 일을 시작한다. 그는 건물 두 개 층을 담당하는데, 한 층 600평 사무실에 150명의 직원이 일한다. 두 층에 300명, 즉 300개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셈이다.

쓰레기통 정리를 마치면 화장실을 청소한다. 휴식시간인 오전 9시 30분까지 팀장의 눈치를 보며 잠깐도 쉬지 못한 서 씨는 ”코로나 때문에 층마다 격리돼 비품 창고에서 박스 깔고 쉬어요. 난방 안 되는 콘크리트 바닥이 얼마나 차가운지...“라고 말했다.

30분 휴식 후 세면대를 들어내 수세미 질을 한다. 화장실 바닥 타일 사이사이는 솔로 문질러 때를 벗긴다. 이어 엘리베이터 홀과 직원 탕비실 2곳을 청소하고, 사무실 화분 관리와 회의실 청소를 마치면 식사 시간이 찾아온다.

서 씨는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도시락을 싸오거나 직접 해 먹는 노동자도 있다. 새벽에 출근한 노동자들은 식사를 끝내고 1시간 취침에 들어간다. 일어나서 사무실 직원들이 식당에서 가져온 탕비실 쓰레기를 정리하고, 각 층 양쪽 비상계단을 쓸고 닦으면 하루 일이 모두 끝난다.

오후 3시 서윤희 씨는 A 빌딩을 나서면서 말했다. "(일하는) 환경이 열악하고 갑질이 심해도 갈 곳 없을까 두려워서 아무 말도 못해요. 그냥 죄송하다고 하는거죠. 우리는 소모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