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청소년 교육으로 통일 한국 이뤄야… 한국 사회 인식 전환 필요해”
“탈북청소년 교육으로 통일 한국 이뤄야… 한국 사회 인식 전환 필요해”
  • 서다은 기자
  • 승인 2020.04.29 14: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탈북민 다음 세대, 통일세대로 키우기(1)
임창호 목사 고신대학교 교학 부총장 북한기독교총연합회 이사장
임창호 목사
고신대학교 교학 부총장
북한기독교총연합회 이사장

통일 교육 없이 통일은 없다

다가오는 통일을 앞두고 탈북민 다음 세대, 통일세대로 키우는 통일 교육이 시급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와 교회는 전혀 시급하거나 중요하다는 인식이 없다.

철학자 칸트는 그의 교육학 강의(1801) 첫 페이지에서 “인간은 교육되지 않으면 인간이 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했다. 기대되는 인간상이 있다면 사람을 교육해야 하고, 기대되는 사회공동체 상이 있다면 역시 사람을 교육해야 한다. 인간사회의 모든 이상과 목표는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교육 없이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거나 발전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교육은 인간과 사회를 존재하게 하고 발전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동시에 교육은 미래를 향한 보험이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중요하게 하신 사역은 12명의 제자를 모아 3년간 교육하신 일이다. 그들이 70명의 제자로 확장되었고, 3000명이 되었고, 그리고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초석이 되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 소개되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선교 명령이라기보다, 사실 교육 명령이다. 이곳에 등장하는 4개의 동사 가운데 주동사가 “제자 삼으라”라는 교육 용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찾아온 선교사들이 제일 먼저 한 일도 교육이었다. 개신교의 선교역사는 1884년부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땅에 세워진 근대적 학교의 시작도 이때부터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튼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경신, 배재, 이화 학교가 기독교학교의 효시가 되고 있다. 이후 한국교회는 교회 부설 학교를 세우기 시작했는데, 1909년에 세워진 장로교회의 부설 학교만 694개교에 이르렀다. 선교사들은 젊은이들을 모아 한글과 성경과 세계를 가르쳤다. 교육을 통해 그들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 1907년 한국 초대장로교회 독노회가 생긴 이후 시작한 중요한 사역은 ‘전국의 조선교회가 각각 한 교회, 한 학교 세우기’ 운동이었다. 이들의 교육적 노력이 10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를 가능하도록 했다. 한국의 부흥과 한국교회의 부흥은 한국교회의 교육 운동을 통한 부흥이었다.

 

탈북민의 절반은 교육받아야 할 청소년

통일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3월 말까지 입국한 탈북민은 33658명이다. 이 가운데 19세 이하 청소년(10~19세)부터 영아(0~9세)까지가 5079명이다. 이들은 국민의 의무 혹은 기본교육인 초·중·고등교육 대상자들이다. 20세~29세까지의 20대가 94530명에 이르는데, 이들은 대학교육이나 기술교육을 받기에 가장 효율적인 나이다. 초·중·고등교육과 대학교육 혹은 기술교육을 받기에 가장 적절한 연령층을 합하면 14609명이다. 전체 탈북민 수의 43%에 해당한다.

일반 학교에 다니는 탈북학생들의 학교 중도탈락률은 중학생이 3.1%, 고등학생은 7.5%에 이른다. 이는 한국 일반 학생들의 3배에 가까운 수이다. 탈북대학생은 2014년도 기준으로 약 1800명에 이르는데, 20~29세까지의 연령층(7646명)을 기준으로 볼 때, 탈북청년의 약 23%만이 대학에 진학하여 공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학생 대학진학률은 80%로 세계 1위다. 한국 학생과 탈북민을 비교해 보면 탈북민의 대학 진학률이 약 1/4 정도에 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탈북민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와 교회의 관심과 시선

지금까지 국내에서 탈북민에 대한 이슈나 현안을 논의할 때, 탈북 성인들에게만 관심을 둔 것이 사실이다. 북한 인권을 고발하고 북한 사회의 실체를 알리는 증인들로서, 또한 자유민주주의 세상에 발을 디딘 이들의 정착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통제사회인 북한에서 나고 자라난 이들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착 생활이 녹록지 않고, 그로 인한 이들의 한국 생활이 힘겨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도 이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정착하고 있는지 수많은 리서치 단체들, 연구소, 정부 등의 기관에서 이들의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설문조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탈북민들을 만나면 이렇게 조언하기도 한다. “한국에 왔으니, 여기서 정착하여 살려면 빨리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문화에 적응하고, 한국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라!”, “북한에서 살았던 정신으로 한국에서 열심히 살면 왜 못사느냐?”, “한국에서는 굶어 죽을 일도 없는데 무엇이든지 하면서 살면 되지 않느냐?”, “너희만 힘든 게 아니라 한국 사람들도 모두 힘들게 살아”라는 말이다.

일리 있는 말이고 모두 맞는 말들이다. 그런데 이 말의 뒤를 살펴보면 탈북민들을 단지 ‘못 먹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 잘살아 보려고, 성공하기 위해 한국 드림을 안고 이 땅 온 사람들’로 바라보는 시선에 고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언젠가는 탈북민을 ‘새터민’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는 이민자들과도 같이 한국 드림을 따라 한국 땅에 찾아온, 단순 이민자 취급을 하는 것이다. ‘한국이 대단한 나라이니 북한 같은 열등 국가의 생활과 문화는 빨리 지워버리고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되도록 힘써라’는 식이다. 매우 제국주의적 요구이며 오만한 요구이다.

탈북민은 새 터를 찾아 이주해 온 자들도 아니고, 단지 배고픔 때문에만 이 땅에 온 자들도 아니다. 단지 잘살아 보려고 한국 드림을 찾아온 자들도 아니다. 죽음을 피해 온 자들이고, 자유를 찾아온 자들이고, 절망의 땅에서 희망을 찾아온 같은 형제요 골육이요 친척들이다. 통일을 연습하라고 하나님이 미리 보내주신 통일 한국 선발 대원들이다. 탈북민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국민적으로 계몽되고 교육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