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으로 울려 퍼지는 실버 세대의 행복
합창으로 울려 퍼지는 실버 세대의 행복
  • 서다은 기자
  • 승인 2020.06.15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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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인 문화를 만드는 ‘성민실버합창단’
2019 성민합창단 정기연주회 ⓒ성민원
2019 성민합창단 정기연주회 ⓒ성민원

성민실버합창단은 평균 연령 80세로 구성된 실버 세대 합창단이다.

현재 37명의 합창단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올해로 창단 17주년을 맞이했다.

합창을 통해 행복한 제2의 인생을 열어가고, 건강한 노인 문화생활을 만드는 성민실버합창단을 소개한다.

 

제2의 인생 서막, 합창단 창단

다른 사람들과 음악적 재능을 공유하고 힘차게 소리 내어 노래하는 합창은 노인들에게 기대 이상의 활력을 부여한다. 그 힘을 알기에 군포제일교회가 운영하는 성민원은 1998년, 군포시노인복지관을 운영할 때부터 노인들이 마음껏 찬양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 예술 활동을 지원했다.

노인복지관에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성민원 이사장 권태진 목사는 더 전문성 있고 차별화된 합창단을 조직한다면 독자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었다.

성민실버합창단 김은숙 단무장은 합창단 창단 당시를 회상했다.

“2003년 봄날, 이사장 권태진 목사님께서 저를 불러 말씀하셨어요. 젊었을 때 반주도 하고 지휘도 하며 음악적으로 재능이 있는 어르신들을 모아 합창단을 만들어서 그분들 노후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해보라고요. 머리가 복잡했어요. 합창단 운영을 해 본 경험도 없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려움이 앞섰지만, 목사님께서 어르신들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과 열정을 느꼈고 저도 용기를 냈습니다.”

2003년 4월 19일, 노인복지관을 이용하시는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지역의 어르신들까지 포함한 오디션을 계획해 열었다. 그리고 오디션을 통해 30여 명의 성민실버합창단의 단원이 구성됐다. 단원은 대부분 신앙을 가진 어르신으로, 군포시 스물세 곳의 각기 다른 교회에서 모인 이들이었다. 이 중에는 피아노 전공자, 성악 전공자 혹은 음대 교수 등 음악적 재능을 지닌 노인도 있었다.

성민실버합창단의 창단을 기념하기 위해 어르신들이 즐겨 부르던 6곡의 성가곡, 독창 등을 준비해 그해 5월 25일 창단연주회를 열었다.

 

한결같이 노래해 온 17년

성민실버합창단은 단원들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7년의 세월 동안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창단 당시 합창단 평균 연령이 71세였으나 지금은 어느덧 80세가 되었다. 단원들은 암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 연습을 더 열심히 한다. 연주회 일정이 잡히면 가사를 화장대, 싱크대, 화장실 등 온 집안에 붙여두고 보면서 외운다.

성민실버합창단이 불협화음 없이 17년간 유지될 수 있던 비결은 무엇일까.

김 단무장은 유지의 비결이 사랑이라고 설명한다.

“2003년만 해도 복지라는 단어가 생소할 때인데 이사장 권태진 목사님께서는 의식주 차원의 복지가 아니라 문화 복지를 이루어 가셨어요. 지역에서 젊은 세대의 합창단들이 생겨났지만 오래 유지되지 못하고 없어지는 것을 심심치 않게 봅니다. 반면 성민실버합창단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어르신들 노년의 삶이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소망하는 사랑의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어르신들은 사랑에 힘입어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체계를 갖춰나갔다.

창단 초기에는 음악에 열정이 있는 어르신을 중심으로 단장, 부단장, 총무를 선출했다. 이후 단원들 스스로 연습 시간, 간식 시간을 정하고 프로그램을 구성해나갔다. 또한 합창단이 지속할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임원 회의를 열어 지난달을 돌아보고 다음 달 일정을 계획하는 시간도 있다.

실버합창단은 창단 13년이 되던 해에 운영비를 자체적으로 충당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지원을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후원자가 되기로 자청한 것이다. 창단 때부터 13년간 물심양면으로 든든한 배경이 되어 준 성민원에 감사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모든 단원이 후원 회비를 냈고, 가진 재능과 물질로 스스로 문화 복지를 이루어가는 성숙한 단원으로 성장했다.

이뿐만 아니라 단원들은 가정에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간식이나 식사를 나누고, 우울함이나 노년의 외로움 등 어려움도 함께 해결하고 있다. 삶을 함께 나누며 어느새 가족이 된 것이다. 단원들의 자녀들도 후원과 협력으로 힘이 되어 준다.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백발의 천사들

합창 단원들은 개인과 팀의 기량을 뽐낼 수 있는 정기연주회를 매년 한 번씩 개최해 노인 여가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일터를 넘겨주고 무대 뒤에서 지내던 노인들이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고 무대 위에서 노래할 용기를 낸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원들은 정기연주회를 위해 동요, 성가곡, 민요, 이탈리아가곡, 한국가곡, 가요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곡을 준비해 항상 기대 이상의 무대를 선사한다. 1시간가량 되는 긴 공연 시간 동안 어르신들은 열정적으로 무대를 완성한다. 무대 위에서 발산하는 에너지를 보고 있을 때면 노인이라는 정의가 무색해진다.

노인들의 눈부신 용기에 화답하듯 공연이 끝나면 박수갈채로 무대가 뒤덮인다. 또한 그런 당신의 모습에 기뻐하는 자녀들을 보며 단원들은 자신감을 얻는다. 합창단 활동을 통해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그들 삶을 변화시킨다.

성민실버합창단은 외부 공연에도 초청받았다. 2013년과 2014년 가을, 두 번에 걸쳐 서울구치소여성수용소에서 위문 공연을 했다.

두 번째 위문 공연 때의 일이다. 실버합창단에서 준비한 간식을 100여 명의 제소자와 함께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름다운 활동을 하는 어르신들을 보며 새로운 다짐을 하는 제소자도 생겨났다. 공연하러 다녀온 후 한 통의 편지가 왔다. 1년 형을 선고받고 5개월째 수감생활을 하던 제소자인데, 찬양을 들은 후 예수님을 영접했고 굳건한 믿음을 갖고 싶어서 노력하는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성경책이 없다며 보내줄 수 있느냐는 부탁도 함께였다.

어르신들의 찬양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한 영혼을 구원했다는 소식은 최고의 기쁨이다.

 

‘나’의 존재를 인정받는 유일한 곳

성민실버합창단 어르신들에게 음악은 소통의 도구고 삶의 기쁨이다. 또한 누군가의 아내·남편,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가 아닌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인정받기도 하는 장소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성민실버합창단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17년 만에 처음으로 모든 연습과 일정이 중단된 것이다. 단원들 모두가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한 고연령층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단원들은 아쉬움과 답답함을 감추지 못한다.

김 단무장은 최근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거리두기를 지키면서라도 연습을 하고 싶다는 어르신들의 연락을 많이 받으면서 음악에 대한 이들의 열정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합창단원들과 통화를 하면 삶에 활력이 될 만한 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합창단 활동을 굉장히 갈급해하세요. 어르신들이 합창단 활동을 통해 자기계발을 하고, 자기가 누군지를 드러낼 수 있던 유일한 시간이었거든요. 어쩔 수 없지만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합창단원의 열정이 코로나19로 잠시 휴식기에 있지만 앞으로 성민실버합창단은 지역 사회에서 더 건강하고 감동을 주는 합창단으로 자리매김해 나갈 것이다.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어 어르신들의 행복 노래가 울려 퍼지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