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히 가릴 때 더 아름다운, 신비로운 성(Sex)’
‘적절히 가릴 때 더 아름다운, 신비로운 성(Sex)’
  • 서다은 기자
  • 승인 2020.07.22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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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성교육은 아무런 제약 없이 성적인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인권이라고 가르쳐… 철저히 진화론적 인간관에서 기인한 것
- 그리스도인은 성을 ‘생명’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생명과 책임, 순결과 절제’
정소영 미국 변호사 세인트폴 세계관 아카데미 대표
정소영
미국 변호사
세인트폴 세계관 아카데미 대표

몇 해 전, ‘비긴 어게인(Begin Again)’이라는 음악영화가 나왔다. 별 볼 일 없는 음악 프로듀서와 무명 가수가 각자의 현실을 극복하고 음악으로 성공한다는 훈훈한 이야기였다. 그 내용 중, 필자에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50대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 주인공에게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사춘기 딸이 하나 있다. 딸이 다니는 학교에 모든 여학생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잘생긴 남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주인공의 딸 역시 그 남학생의 눈길을 받기 위해 야한 화장도 하고 과감한 노출도 시도해 보면서 애태우고 있었다.

딸이 걱정스러운 아버지가 그렇게 하고 다니지 말라고 아무리 야단을 쳐 보아도 별 소용이 없었다. 그때, 딸과 세대 차이가 좀 작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줄 것 같은 여자주인공이 딸에게 남자를 사로잡는 법에 대해 충고를 해준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남자는 자신을 다 내보이는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신비감이 들지 않으니까…. 그러니 이제부터 그 남학생에게 관심이 없는 척하고, 옷도 얌전하게 입으렴. 그러면 오히려 그 남학생이 너에게 관심을 가질 거야”라고 말이다. 이 충고를 받아들인 후, 아이는 그 남학생과 사귀는데 성공한다.

최근 담양의 어느 남녀 공학 고등학교에서 성교육 시간에 콘돔을 끼우는 연습을 시키겠다며 바나나를 준비물로 가지고 오라고 했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학부모들의 항의로 그 수업이 취소되긴 했지만,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성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의 교육철학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성교육은 ‘해방’ 철학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존의 권위, 질서, 윤리, 도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을 함으로써 인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더 확대된다고 믿는 신념이다. 그래서 어린아이 때부터 자기의 몸을 잘 이해하게 하고 스스로 성적인 즐거움을 찾게 하기 위해 자위를 가르치고, 서로 동의하기만 하면 그 대상이 누구든 나이가 어떠하든 아무런 제약 없이 성적인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 즉 인권이라고 가르친다.

이러한 철학은 철저히 진화론적 인간관을 기초로 하고 있다. 언제 어느 때이고 스스로 원하여 선택하고 결정하기만 하면, 즉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만 자신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기만 하면 이는 자신에게도, 사회에게도 모두 ‘선’한 일이 된다고 믿는다.

인간이 성적인 본능에 따라 순응하며 사는 것은 결국 인간 역시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따라서 동물과 같이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성적인 욕구를 비롯한 시기, 질투, 탐욕 등의 본능으로부터 ‘자유’하여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인간관의 소산이다. 인본주의자들과 진화론자들이 외치는 ‘해방’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은 오직 ‘생명의 탄생’과만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 위에 충만하라고 하신 이유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를 얻고자 하심이다. 그 방법으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이라는 견고하고 안정된 틀 내에서 성을 통해 한 몸이 되는 과정을 거쳐 자녀가 태어나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을 단순히 육체적인 차원에 두신 것이 아니라 전인격적이며 영적인 차원에 두시고 엄격한 한계를 설정해 놓으신 것이다.

세상은 성을 ‘유희’라는 관점에서 보지만 그리스도인은 성을 ‘생명’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세상은 성적인 쾌락의 제한 없는 추구를 지향하지만, 기독교인은 오직 일부일처의 결혼 제도 안에서만 서로의 친밀감에 대한 표현으로 성을 허용한다. 그리고 문명의 역사와 경험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결혼이 온전할 때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성장하고 행복해졌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성교육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그것이 ‘생명’과 직결되어 있음으로 얼마나 조심스럽고 책임감 있게 다루어져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이지 콘돔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낙태는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것에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성교육은 하나님이 주신 가정의 질서는 어떠한지, 그것을 지켜나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맛볼 수 있는 가정 내에서의 천국의 비밀은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이지, 남편과 아내가 서로 양보 없는 주도권 싸움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가정 안에서도 손해 보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미디어가 인간의 성을 다 발가벗겨 놓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이때, 이런 고리타분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설 자리는 점점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생명과 책임’ 그리고 ‘순결과 절제’ 등의 가치와는 관계없이 쾌락만 추구하는 성을 배우고 있으니 어찌하겠는가? 모기만 한 소리라도 ‘그러면 안 된다’고 계속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일은 먼저 하나님을 알게 되어 그분을 경외하게 된 어른들이 할 수밖에….

 

정소영 미국 변호사 겸 세인트폴 세계관 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