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료] A급 같은 B급이 되자
[건강의료] A급 같은 B급이 되자
  • GBN뉴스
  • 승인 2021.04.05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머리앤코글로벌한의원 이태훈 대표원장
머리앤코글로벌한의원 이태훈 대표원장

수능 시험이 100일 남았을 때의 일이다. 한창 공부를 하고 있는데 눈이 보이지 않았다. 자취하느라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해 눈에 영양실조가 온 것이다. ‘지독하게 어려운 상황에서 공부하려는데 왜 안 보이냐’는 원망이 들어 화가 났다.

눈물의 기도를 했다. 다시 눈이 보였다. 하나님이 도와주셨구나. 1, 2, 3지망을 모두 경희대 한의학과로 써냈다. SKY대학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오로지 경희대 한의대를 향했다.

그렇게 들어가서 접한 한의학은 한마디로 ‘박제한 새’였다. 낡은 노트 한 권을 들고 들어와 ‘명의 되는 레시피’라고 우겨대던 교수님의 강의는 우물 안 개구리의 외침으로 들렸다. 양의학에 눌려 열등의학 전공자 코스프레에 빠진 선배들의 모습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S대에 버금가는 최고 인재를 모았다는 경희대 한의학과는 영화 ‘기생충’에 나온 지하실이었다. 예과 2년 동안 착한 친구 네 명이 자살했다. 우리는 피의 학번이 된 것이다. 질식할 듯했다.

생활고도 심했기에 장학금이라도 받아서 졸업이라도 해볼 요량으로 담임교수실을 찾아갔다. 바둑판에 시선을 고정한 교수님은 귀만 열어주었다. 그에게 장학금 이야기를 꺼냈더니, “없어. 올해는 내·외부 장학금이 없어. 작년에 너무 많이 나가서 0원이야. 0원.”이라고 했다. 가뜩이나 다니기 싫어진 학교인데, 등록금 걱정을 풀지 못하게 되었다. 내 생계도 해결할 수 없었다.

순간 ‘내가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냐’라는 생각이 들며 분노가 몰려왔다. 학교를 접고 노점이나 하자는 울분이 몰려왔다. 문짝이 터져라 닫고 나온 뒤 자퇴서를 내려고 대학 사무실로 달려갔다. ‘두 번 다시 한의학 계통에 발을 디디나 봐라. 죽어도 한의학계에서는 안 죽는다’ 는 다짐을 하며…. 그런 나를 학생처 직원이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마지못해 그의 의견에 따라 휴학계를 내고 나왔다.

지금은 학생처 직원분과 3년간 노점상을 하게 해준 교수님 모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교수님의 자극 덕택에 복수의 칼을 품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복학한 나는 ‘기본에서부터 시작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B급 인생을 살 것이라면, A급 같은 B급이 되는 게 낫겠다고 본 것이다. 하루 열 시간씩 ‘동의보감’과 ‘황제내경’ 원문을 파고들었다. 한문을 공부해본 적이 없는 내게 마침표가 없는 한문 원문을 읽는 것은 외계인이 쓴 암호문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5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시간씩 읽었더니 어디서 문단이 끊어지는지, 어떤 뜻인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동의보감’ 원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암기하게 되었다. ‘황제내경’은 어디에 무슨 말이 나오는지 정도까지는 알게 되었다. 볼수록 재미있고 신비스러운 자료였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신기하다는 것이 현재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픈 환자 앞에 서보면 학자(교수)와 의사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학자는 이론과 추론을 말해도 되지만 의사는 결론만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칠 능력이 있으면 의사, 그렇지 못하면 돌팔이 소리를 들어야 한다. 학자는 그렇지 않다.

의사면허를 받으며 좋은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후에도 ‘포기’와 ‘오기’ 사이를 수없이 오갔다. 하고 싶지 않은 공부를 하느라 모두 합해 8년을 허우적거렸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과학은 검증이라는 사실을. 구닥다리처럼 보여도 현실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면, 쓰임이 있다면, 오래된 그릇이라고 해서 밥 먹는 데 지장이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한의학도 매우 유용한 학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오래되었기 때문에 앤티크 컬렉션에서 비싼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도 보았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헬리콥터 같은 비행체의 비행 원리가 현대 비행기의 모티브로 재현되기도 한다. 한의학을 공부하며 여러 가지 학문의 중요한 기준을 배우게 되었다. 많은 분야를 섭렵했다. 균형을 잡는 데 주목했다. 추론을 결론으로 바꾸지 않는 정직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를 모두라고 하지 않는 진중함도 갖추려고 했다.

가난했던 학창 시절과 힘들었던 교통사고가 ‘궁즉통(窮則通)’을 할 수 있는 힘을 준 것 같다. 통(通)을 하려면 반드시 아픔이라는 ‘통(痛)’을 견뎌내야 한다. 이 고통 때문에 궁즉통을 회피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기에, 가난 속을 헤매던 내 삶을 견뎌낼 수 있는 여력이 생긴 것이다. ‘통(痛)’이 ‘통(通)’을 부른다, 통(通)하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통뇌법 혁명: 중풍 비염 꼭 걸려야 하나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