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故 배형규목사의 죽음
[칼럼]故 배형규목사의 죽음
  • 관리자
  • 승인 2007.09.01 18: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7월 30일 오후,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아래 인천국제공항 화물터미널 활주로 끝에 나무로 만들어진 관 하나가 놓여있었습니다. 하얀 천 밑에 누워있는 시신은 바로 고 배형규목사였습니다. 신문과 TV에 너무 자주 마주쳐 친숙해지기까지 한 아프간 봉사단 출국기념 사진에서 그토록 환하게 웃고 있던 그분이 이제 말없이 누워계십니다. 떠날 때는 여객터미널에서 출국하셨지만, 돌아올 때는 화물터미널로 귀국하게 된 것입니다. 영혼이 떠나버린 육체는 더 이상 인간생명이 아닌가 봅니다.

유족을 대신해 시신을 인수받아 병원 안치실로 돌아와 검시를 하였습니다. 모습은 분명 배목사였지만, 아무리 불러도 대답 한 마디 없습니다. 육신의 각 부분은 모두 이전대로였음에도 영혼없는 육신은 그저 시신일 따름입니다. 수많은 총알이 빗발쳐와 머리부터 발까지 들쑤셔 놓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육신일 뿐, 텔레반은 배목사의 영혼을 죽이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배목사의 영혼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쉼을 누리며, 오히려 우리를 위해, 무엇보다 남은 피랍자 동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배목사와 함께 8년을 같은 교회에서 마주치며 지냈습니다. 결코 세속과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나타내며 살아가는 지혜를 시간시간 깨우쳐주신 말씀의 선지자였습니다. 청년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며,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는 사랑의 사도였습니다. 청년들에게 생명사랑을 키워주고자 부족한 저를 몇 번이고 불러 강의를 맡기셨던 생명운동의 선구자였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장기 뿐 아니라, 마지막 시신까지 의학발전을 위해 기증하겠노라 서약해두셨던 것이지요.

정신문화연구원의 외국인 학생들이 아프다고 하면, 언제든지 아픈 환우를 데리고 저희 병원까지 달려왔던 기억이 오늘따라 생생히 떠오릅니다. 제3세계 유학생들이 돈이 없어 치료비를 내지 못하면 안타까와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놓으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남들이 평생해도 다 못할 사랑을 이미 넘치도록 행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거두어가시어 당신 곁에 앉히신 것이겠지요.

많은 사람들은 왜 그토록 위험한 곳을 갔냐고 비난하지만, 어쩌면 위험한 곳이기에 배목사님의 희생이 필요했나 봅니다. 토마스선교사님이 대동강 강변에서 성경책 하나 건네주고 강물을 피로 적시운 것도 당시에는 선교의 실패로 기록되었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스데반이 길에서 돌에 맞아 죽은 것도, 세례요한이 헤롯에게 목 베임을 당해 죽임을 당한 것도 당시에는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산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예수님의 평가는 여자가 낳은 인물 중 최고였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지요. 지금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지만, 먼 훗날 아프간 사람들이 배형규목사를 어떻게 평가할지 주님만이 아십니다. 행여 그들에게조차 기억에 남지 않는 이름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분명 하늘나라에서 껴안아 주시며 가장 사랑스레 불러주실 이름일 것입니다.

고 배형규 목사님, 당신은 온전히 승리하셨습니다. 당신의 숭고한 사랑은 당신이 길러 놓으신 수많은 청년들을 통해 분명 이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아프간은 기필코 평화의 땅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제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저도 당신의 순수함을, 당신의 열정을, 당신의 사랑을 닮고 싶습니다.
글_박상은 박사(안양샘병원 의료원장, 한국누가회 이사장, 본지 논설위원)
2007/09/01 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