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전하는 교육에세이]까치들의 울음소리
[부모가 전하는 교육에세이]까치들의 울음소리
  • 관리자
  • 승인 2007.09.0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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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병아리 아파트에서 떨어 뜨려 봤어요.” “다리 다친 비둘기도 죽여 보고요.”
‘학교 폭력’에 대한 주제로 논술을 하는 데 아이가 내뱉은 말이다. 듣기만 해도 섬뜩한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웃으면서 자랑 삼는다. “됐다. 그런 건 반성해야지. 자랑할 게 못된다.”“앞으로 그런 말 자꾸 하면 선생님은 실망할 거야.” “네.”
“선생님이 실제 겪었던 얘기 하나 해 줄게.”
“선생님이 길을 지나가는데 까치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거야. 한두 마리도 아니고 예닐곱 마리가 아스팔트 위에 내려앉았다 날아올랐다 하며 애타게 뭔가를 호소하고 있었어.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갔더니 까치 한 마리가 차에 치어 죽어있었지 뭐야. 차가 쌩쌩 달려서 선생님은 차마 그 시체를 치우지 못하고 지나갔는데 점심이 다 되도록 모여서 울던 까치들이 누군가 시체를 치우고 나서야 잠잠해 지는 거야.” 아이들이 숙연해졌다.
처음 방과후 교사로 쓰임 받았을 때 아이들이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곤두 세웠었다. 특히나 사춘기를 시작하는 오·육학년들 언어 속에서 발견되는 잔인성, 엽기성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일일이 지적하고 고쳐 나가려고 진을 다 뺐다.

삼 년이 지나 사 년째 접어들고 보니 아이들이 한 때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그 단계를 꼭 거치고 성장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때론 영화 속에서 친구들과의 대화 가운데 배운 욕들을 써보기도 하고 잔인한 말을 했을 때 자신의 언어가 친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걸 깨닫고 되풀이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럴 땐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정도가 지나치게 말할 때만 한번씩 짚어 준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선배 녀석 하나가 후배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반항하면 더 조르겠다고 했는데 덩치가 더 큰 후배 녀석이 선배를 발로 차 버렸다. 선배 녀석이 씩씩대며 후배와 맞붙어 계속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선배 녀석을 조용한 곳으로 불렀다. 아이들과 깊은 대화를 해야할 필요가 있을 땐 개인적으로 조용히 만나는 게 큰 효과를 발휘한다. 특히나 선·후배가 섞여 있을 땐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네가 한 행동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 줄 아니?” “잘 몰라요.” “그럼, 너보다 강한 사람이 네 목을 조르는 데 가만히 있을래? 반항하면 더 조르겠다 협박하면 그냥 놔 둘 거냐고?” “네.” “왜?” “더 세게 맞을 테니까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언성이 높아졌다. “아니, 그건 옳지 않아! 더 세게 맞더라도 소리 지르고 반항해” “어떻게요?”“‘네가 내 목을 누르면 내가 숨을 못 쉬잖아, 그만 놔!’이렇게 소리 질러.” “그 아이가 우리 반 얼짱 인데요.” “그래도 소리 질러.” 이런 걸 가르치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선생님, 전 억울해요.” “왜?” “제가 그렇게 당하고 있었을 때 지나가던 어른들이 안 말려 줬어요. 선생님은 오늘 말리셨고요.” “그래? 어떤 어른이야. 선생님이 그 자리를 지나갔으면 얼른 말려 줬을텐데.” “그래서 많이 속상했겠구나!”
“네."
갑자기 아이의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눈물이 쏟아진다. 덩달아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속상했던 일을 네가 너 보다 약한 사람에게 되풀이하면 어떻게 되겠니?”
“선생님이 널 많이 좋아하고 지켜보고 있지만 오늘 같은 행동은 결코 옳지 못한 행동이라 혼내지 않으면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 거야!”
“네.”

아이의 마음을 달래 주고 기도하며 돌려보냈다. 갑자기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선 욕하는 것 보여 주고 텔레비전에선 서로 비방하거나 상대를 깎아내리는 공방전을 보여 주는 우리네 현실이 매우 안타깝게 느껴졌다. 상대를 웃기겠다고 ‘피노키오’처럼 아름다운 동화를 각색해서 피노키오가 제페트 할아버지를 칼로 찌르는 게 버젓이 공영 방송에 상영되는 세상이니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물론 은박지로 만든 칼이지만 시청자 중에 초등학생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고등학교 때 친구 하나가 단짝 친구에게 맞아서 숨을 거두었다. 한 대 때렸는데 맞은 아이가 간질이 있어서 눈이 돌아갔다. 째려본다고 한 대 더 때렸는데 장이 파열되어 숨졌다. 그 때 그 부모님 다시는 학교폭력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장례를 학교에서 치루고 장학금을 기증하셨다.

그 땐 그저 가슴 아픈 일이었는데 부모가 된 지금 그 부모님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하는 마음과 정말 큰 사람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까치들의 서글피 울던 사랑의 소리가 오늘 따라 귓가에 쟁쟁거린다.

글_오미선(군포시 오금동)
2007/09/01 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