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전하는 교육에세이>함께 키우는 아이들
<부모가 전하는 교육에세이>함께 키우는 아이들
  • 관리자
  • 승인 2007.10.0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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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짜리 아들 녀석 어느 날부터 가수가 꿈이란다. 평소에 흥얼거림도 없는 녀석이라 당황스러웠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친구 덕분에 이어폰을 끼고 컴퓨터 앞에 앉아 다리를 까딱까딱 빠른 템포의 랩을 따라 부르느라 정신이 없다.
손끝이 야무져 조립에 소질을 보이는 아이라 그 쪽으로 발전시켜 나가고자하는 바램이 있었으나 대학교까지 예술대학을 가겠다고 계획표를 세워 놓은 아이에게 뭐라 할 말이 없어 지켜보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아이가 속한 성가대 지휘자 선생님께서 녹음실에 데려가 녹음을 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아이 둘이서 들떠 이틀에 한번씩 만나 노래 연습을 하는 눈치였다. 음을 잘 맞추지 못해도 나이 마흔 하나에 바이엘 레슨을 받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묵묵히 바라보며 밀어주고 기도하는 길밖에는.
녹음실에 가는 날을 이틀 앞 두고 내 앞에서 노래를 한번 해 보라 했다. 준비가 어느 정도 됐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아직도 곡 선정조차 제대로 해 놓지 않은 상태였다. 나서지 않으려 했는데 선생님께 미안해서라도 연습을 시켜야 했다. 노래방에 데리고 갔다.

아이들이 가장 자신 있다고 하는 노래를 두 곡 연습시켰다. 아들 친구는 노래를 많이 불러 봤는지 폼도 제법 그럴싸하고 목소리도 멋들어졌다. 우리 아들은 몸도 뻣뻣하고 작은 목소리로 친구와 함께 노래 부르는 게 마냥 좋은 표정이다. 한 시간 가까이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이 지치면 나도 한 곡씩 따라 부르며 흥을 돋궜다. 아들의 친구가 들은 소감을 물어 왔을 때 노래에 문외한이라 좋은 느낌만 얘기해 줬다.

드디어 녹음실에 가는 날이 다가왔다. 단장하고 목을 가다듬고 흥분한 표정이 역력했다.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전문가 선생님을 만나 자기들의 실력을 평가 받는 것도 좋겠다 싶어 기도해서 보냈다.

점심 12시쯤 출발했는데 오후 5시가 되어서 핸드폰 벨이 울렸다. 지휘자 선생님이시다.
“민서 어머님이시죠. 아이들이 녹음 실장님 평을 듣고 가서 상처 받았을 수도 있어요. 변성기라 목을 아껴야 하고요. 아이들이 음을 변조해 불러서 목이 많이 상했대요. 악기를 먼저 하나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도록 해 주시고요. 노래는 변성기 지나서 지도 받아도 늦지 않대요. 어머니, 아이들 잘 했다고 격려 많이 해 주세요.”

순간 뭉클해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아이들 꿈이 가수라서 자신이 걷는 길의 후배라 생각되어 녹음실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녹음 실장님의 평까지 받게 해 주신 선생님. 고마운 마음에 점심이라도 사 드리라고 아이들 편에 보낸 식사비를 고스란히 돌려보내시고 아이들 필요한 책을 사 주라고 말씀하신 선생님.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시려고 레슨도 다른 날로 바꾸시고 아이들을 데리고 하루를 온전히 함께해 주신 선생님께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시무룩한 표정일줄 알았던 아들이 씩씩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엄마, 세상에 그렇게 훌륭하신 녹음 실장님이 어디 있어! 다른 사람 같으면 우리 노래 실력이 별로여서 녹음 안 해 주신대”
“녹음도 해 주시고 가수 윤하가 어린 나이에 어떻게 가수가 되었는지도 설명해 주셨어.”
“나 피아노 그만 두려 했던 거 더 쳐야 겠어.”
“노래는 변성기 지나서 하고.”
아들의 의연한 태도에 너무 감사했다. 피아노가 지겨워 그만 두겠다고 눈물을 글썽글썽하던 게 며칠 전이었는데 전문가의 말 한 마디에 큰 고민 하나가 싹 날아가 버렸다.

내가 가진 것으로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건 큰 기쁨이다. 나는 오늘도 크고 귀한 사랑을 나누어 받았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목소리 한 번 듣지 못했던 녹음 실장님으로부터 진심어린 조언을 받고 아들은 흐뭇해했다. 그 사랑이 아들의 미래를 밝게 열어 나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물론 지휘자 선생님의 관심과 배려 덕분이다.
오늘 받은 사랑, 나도 내게 있는 하나님 주신 것으로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살리라.

오미선(군포시 오금동)
2007/10/06 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