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온기
따스한 온기
  • 오미선
  • 승인 2008.04.26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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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출근하고 아이들 방문을 조용히 열어 보니 작은 아들 녀석이 두 개의 인형을 꼭 껴안고 자고 있다. 한 개는 중학생이 된 큰 아들 세 살 때 가지고 놀던 강아지 인형, 한 개는 큰 아들 녀석 과외 선생님이 동생 가져다 주라하신, 머리에 빨간 두건을 두른 보드라운 사자 인형이다.
알러지가 있는 작은 아들 녀석을 낳고 집안의 침대, 커텐, 쇼파 등 털 날리는 건 모두 버렸다. 남아 있는 거라곤 털이 빠지지 않는 융 소재의 인형들이다. 나랑 함께 잘 때는 필요 없는 인형이 아이들끼리 방을 사용하게 한 후론 종종 등장한다.
핸드폰으로 친구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는 큰 아들은 핸드폰을 머리맡에 두고 자고 아직 핸드폰이 없어 낮에 친구들과 힘차게 뛰어 논 작은 아들은 저녁엔 많은 인형들과 블록, 공룡, 곰탱이 마개 인형과 논다. 친구들이 모두 닌텐도가 있다고 사달라고 조르지만 눈이 좋지 않아 먼 거리를 더 자주 보고 자연 속에서 뛰놀아야 하기에 허락하지 않기로 했다.
신기한 건 자기들끼리 있을 때 품고 자던 인형이 엄마인 나와 잘 때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아빠가 출장이라도 갈라치면 내 품에 쏙 들어와 잔다. 자다 보면 발길질과 몸부림 때문에 살짝 다른 방으로 가지만 잠들기 전까진 안아 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준다.
남편이 베트남에 있을 때 난 매직콩과 금붕어 한 마리를 키웠다. 콩은 ‘보람’이, 금붕어엔 ‘희망’이라는 이름을 지어서 남편이 생각날 때마다 사랑을 듬뿍 담아 먹이도 주고 물갈이도 해 줬다.
매직콩은 잭과 콩나무에 자라는 콩나무처럼 쑥쑥 자라 보람을 가져다 주었고 금붕어는 남편 돌아오기 전까지 씩씩하게 잘 살아 주었다.
물론 남편이 돌아온 후론 그 녀석들도 수명이 다 해서 흙으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사람은 누군가에 기대거나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사는 것 같다. 받은 만큼 사랑을 쏟고 때론 그것이 책임감이라 할지라도 기쁘게 감당해 내는 것 같다. 한동안 소아기호증 환자로 인해 우울했었다.
“놀이터에서 혼자 놀면 안 돼요. 학교에 일찍 가도 안 돼요.”
“길을 묻거든 멀찌감치 떨어져 대답하세요.”
“엘리베이터에도 모르는 사람과 함께 타지 마세요.”
불신을 조장하는 말을 교육해야 하는 입장이 부끄러웠다. 새로 단장한 원색의 해바라기 놀이터가 덩그라니 혼자서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다.
그동안 우린 아이들을 너무 방치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이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 속에 텔레비전 유해 싸이트에 온갖 전자파 속에 갇혀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었는데 부모들은 자녀들과 대화하기가 어렵고 놀아주기가 힘들어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에 슬쩍 떠맡겨 버린 건 아닌지.
편하다는 이유, 유행에 민감하여 상업적으로 쉽게 흡수되는 속성을 이용하여 아이들을 이익을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다행이도 로보캅 할머니 할아버지가 등장하고 어머니 봉사단이 모집되는 걸 보니 참 감사하다. 우리의 아이들이 컴퓨터, 텔레비전, 인형 대신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쾌재를 부를 일이다.
일터에 나가신 엄마를 대신해 저녁 6시만 되면 손자 손녀를 찾아 온 동네를 목이 터지라 이름을 부르시며 찾아 다니시던 할머니가 그리운 초저녁이다.

2008/04/26 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