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봉사 첫걸음은 마음을 만져드리는 것
미용봉사 첫걸음은 마음을 만져드리는 것
  • 관리자
  • 승인 2006.05.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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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자원봉사자 양인자 씨>

"미용봉사 첫걸음은 마음을 만져드리는 것"

-어르신들에 대한 봉사는
-‘오늘’최선 다해야

수원 연무중학교 후문 앞에 서면 건너편 횡단보도 끝에‘연무종합사회복지관, 무봉종합사회복지관이라는 표시판이 있다.

저 길목인가본데… 한 동네에 사회복지관이 두 곳? 이런저런 궁금증을 갖고 골목에 들어서면 가운데 도로를 사이에 둔 70년대와 2000년대의 집모양이 한 눈에 들어온다.

두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좁은 골목길 사이로 여러 가구가 그야말로 작은 산 중턱까지 다닥다닥하다. 창이 있는 벽이 곧 담이 된 여러 채의 집들은 유리대신 불투명 비닐들이 박스 테잎에 기대 창문이 되고 있었다.

2-3분 걷는 동안 10개 가까운 점(占)집들, 아이들 울음소리 대신 구부정한 노인들이 바닥에 기대앉아 찬거리를 다듬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한구석이 미어지듯 편치 않았다. 그나마 가까운 곳에 사회복지관이 두 곳이 있다는 것이 지역주민들에게는 ‘새로운 경험과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터전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북적거리며 왁자지껄할 일이 드물 것만 같은 지역의 분위기에서 밝은 모습으로 미용봉사를 하고 있는 양인자씨(42세, 미용사)를 만난 것은 참 고맙고 반가운 일이었다. 무봉종합사회복지관의 효도미용실은 그가‘미용사 자격증을 따서 돈을 벌어야지!’했던 생각을 잊게 해준 꿈터가 되었다.

그에게 매주 목요일은 효도미용실에서의 자원봉사가 하루 일과의 우선순위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어르신들의 머리를 손과 마음으로 다듬고, 만지다보면 결혼하기 전에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도 만나고, 여전히 부족하기만한 며느리를 곱게 봐주시는 시어머니의 모습도 그 속에서 만난다.

주 1회 문을 여는 효도미용실에 예약된 파머 16명 컷트 15명 어르신들의 머리를 쉴새없이 만지다 보면 몸은 파김치처럼 피곤하지만 간간히 찔러주시는 뇌물(?) 덕분에 일순간에 피로가 사라지곤 한다.

퍼머약이 묻는 양인자씨 손을 대신해 주름지고 거친 손으로 부시럭 껍질을 벗겨 사탕을 입에 넣어주실 때, 어르신들이 제일 좋은 것으로 아는 ‘인삼향 나는 껌 한통’을 앞치마 넣어주실 때, 원장님!(어르신들은 양인자 미용자원봉사 팀장을 ‘원장님’이라고 부른다)부르시며 ‘내 머리가 너무 지저분혀서 어떻혀! 당췌 건수할 수가 있어야지! 원장님이 잘 해줄 거이지!’믿어주실 때 너무 행복하다.

그동안 양인자씨에게 수고의 땀과 보람의 기쁨이 된 이들은 무의탁어르신 450명, 지역 어르신 3,600명, 기타 저소득 가정 576명이나 된다.

특별한 솜씨도 아닌데 비봉, 정남, 수지 등 그 먼 곳에서 택시비를 들이면서도 찾아오시는 어르신들, 어르신들에게 양인자씨는 머리만 해 주는 미용사가 아니라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의 외로움에 딱딱하게 굳어진 가슴과 표정을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소리내 웃게 만드는 행복치료사다. 퍼머 할 때가 되었는데도 어르신이 안 오시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것은 미용봉사를 하는 양인자씨의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이다.

건강에 이상이 생겨 치료 중에 복직한 남편과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4학년생인 두 자녀, 수술 후 몸이 약해진 그이지만 목요일 미용봉사는 그에게 일상의 삶이 되고 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유○○ 어르신은 양인자씨에게 추억과 교훈을 함께 주고 떠나셨다. 오늘 건강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자르시고, 때로는 자녀를 만난 듯 세상살이에 대한 고달픈 푸념을 하실 때라도 기꺼이 들어줄 것, 다음에 예쁘게 만들어드릴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르니까 힘이 들더라도 늘 최선을 다해서 해 드릴 것, 그렇게 해야 ‘어르신들을 영영 볼 수 없는 일이 있을 때’ 그나마 아쉬움이 적게 남을 것 같아서이다.

어르신들이 이사를 가신 후에도 만원이 넘는 택시비를 쓰시면서 효도미용실을 찾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제가 해 드리는 머리모양이 다른 미용실보다 뭐 얼마나 더 다르겠어요? 거기서 거기지. 아마 머리를 하시는 동안이 좋으신가 봐요. 저나 함께 일하는 봉사자들모두 어르신들에게는 자녀처럼 허물없이 대하고, 어르신들보다 제가 사실은 재미있고 행복하거든요.”

“복지관에서는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무료로 미용을 해 드리니까 봉사하는 저야 뭐가 어려운 게 있겠어요, 그저 어르신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지난해부터 양인자씨는 영역을 넓혀서 지역의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지공예 강의를 자원봉사하고 있다.

“할 수록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양인자씨의 앞으로의 계획은 ‘미용실을 열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평생 미용봉사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어서.

권연순기자 (2006.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