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인권의 보장과 신장을 위하여 논쟁보다는 행동하고 실천하는 힘을 모아야
청소년 인권의 보장과 신장을 위하여 논쟁보다는 행동하고 실천하는 힘을 모아야
  • 김지혜
  • 승인 2008.07.12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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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소장
청소년을위한군포내일여성센터 아동청소년인권센터

해마다 잊어버릴 만하면 터지는 아동 청소년 대상 성폭력 사건들을 보면서 관련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는 그런 말을 하기도 한다. 그 사건들 덕분에 그나마 시민들의 관심과 경각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이 말은 뒤집어 보면 강력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이 이렇게까지 이슈화되지 못했을 거라는 얘기도 된다. 물론 우리 사회의 높아진 인권의식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어느 사회복지학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아동복지법은 아동의 피를 먹고 자라난다.”
너무나 끔찍한 말이지만 그대로 반박할 수만은 없는 그 무엇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진다. 그만큼 아이들이 끔찍하게 희생되어야만 우리의 제도는 움직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인권의 보장과 신장에 관한 일을 해오면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접해 들을 때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일이란 게 아무리 의미있고 보람되더라도 순간 순간 동기부여가 안 되면 하기 힘들게 마련인데, 우습게도 때를 가리지 않고 터지는 강력 사건사고로 인해 나는 동기부여를 다지고 첫 마음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 일을 하게 된 동기도 어린 시절 나도 모르게 나에게 행해진 사소한 성폭력들이 성인이 된 나를 여전히 옭아매어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교육을 통해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 나는 여전히 소중하다는 것을 들으면서 내 속의 어린 아이가 치유되는 것을 느끼며 내가 할 일을 어렴풋이나마 정하게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내 아이와 그를 둘러싼 환경이 보다 안전하고 건강해지도록,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더 의미를 두게 되었다.
지난 4월 발생했던 대구 성폭력 사건의 경우 전문가들은 주된 원인을 양육자의 부재(한부모, 맞벌이 등), 방과후 시간에 대한 무대책 등의 물리적인 방임과 음란물 등에 무방비로 노출된 총체적 방임의 문제로 보고 있다.
대부분 맞벌이 가정이 많은 이 학교는 무슨 이유에선지 교육부의 지원대상도 아니어서 방과후 시간에 대한 제도적인 장치도 없는 상태라 아이들이 학교를 파하면 그대로 방치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가해학생들은 주로 인터넷 포르노물을 보고 흉내내는 식으로, 학교운동장, 놀이터, 부모가 없는 집 등에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성폭력이 이루어졌다. 아이들의 놀이문화 속에서 남학생이 여학생을, 고학년이 저학년을, 인근 중학생이 초등학생을 성을 도구로 폭력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게다가 IT 강국인 우리나라는 방방곡곡 PC방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초고속 인터넷이 가능하고, TV만 켜도 수많은 케이블 채널을 통해 선정적인 장면들이 넘쳐나는 구조에, 솜방망이 규제와 처벌로 인해 아무런 여과 없이 유해정보들이 시간시간 수위를 높여가며 우리의 아이들에게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규제를 위해 보건복지가족부에서는 청소년보호법시행령에 케이블 채널 등에 대한 규제의 내용을 강화하려 하고 있지만 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만족스런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학부모와 시민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때이다.
한창 자아정체성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포르노 등 음란물을 접한 아이들은 왜곡된 정보를 통해 성을 인식하게 되고, 성을 쾌락의 도구, 여성을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 정도로 여기게 된다. 그래서 별 죄의식 없이 성폭력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연간 10시간씩 성교육을 하도록 되어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한 명의 보건교사가 전교생의 성교육을 밀도있게 진행하기엔 어려움이 있고, 대다수의 학교들이 관련 유인물을 나눠주거나 중고등학교의 경우 1회성 방송강의, 학년전체를 대상으로 한 강의 등으로 형식적으로 성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나마 전문기관이나 단체에 의뢰를 해오는 학교들도 대부분 예산 없이 무료로 해주길 기대하고 있어 교육의 내용 면에서는 그다지 개의치 않는 분위기이다. 현장에서 이런저런 사정들을 접하게 되면 답답하고 안타까운 면들이 너무 많아 성토 아닌 넋두리가 되어버렸다.
누구나 만족할 만한 완벽한 제도적 장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완벽해지도록 지속적으로 보완, 개선해나가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성교육 하나만 갖고도 몇 날 며칠을 거품을 물고 토론할 거리이지만 하루빨리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 속에서 자라기를 바란다면 더 이상 논쟁보다는 행동하고 실천하는 힘을 모아야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2008/07/12/ Copyright ⓒ 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