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살아있는 것에는
모든 살아있는 것에는
  • 관리자
  • 승인 2008.07.1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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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시인)

얼마 전 <함평 나비축제>에서 장수풍뎅이 암, 수 한 쌍을 제부에게 선물 받아 왔다.
큰아들에겐 너무 소중한 풍뎅이가 내겐 좀 무섭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했기에 풍뎅이에게 먹이를 주고, 물을 주는 것은 일곱 살 큰아들의 몫이 되었다.
그런데 장마가 시작되기 전, 요 며칠은 초여름의 산뜻한 바람과 알맞은 햇살 덕에 바깥에 나가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은 좋은 날이 계속 됐었다.
아들도 하루 종일 줄곧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노는 것에만 열을 올리더니 집에 있는 풍뎅이에겐 관심을 쓸 겨를이 없었나보다.
건강하고 힘이 너무 넘쳐서 암컷을 못살게 굴기까지 하던 수컷이 이상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다른 때 같았음 ‘제리뽀’를 넣어주기가 무섭게 날카로운 뿔을 세우고 덤벼들었을 수컷인데 그 수컷이 아무런 미동도 없이 한곳에만 그대로 있는 거다.
아들은 수컷을 보고 처음엔 “엄마, 수컷이 자고 있나봐.” 하더니 이젠 “엄마, 수컷 풍뎅이가 하늘나라로 갔나봐.”한다.
나 역시 죽음을 눈치 챘지만 그 수컷의 주검을 옮겨낼 용기가 도저히 나질 않았다. 그래서 “아빠가 오실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슴 깊은 저편에선 ‘내 무관심과 사랑 없는 행동 때문이었구나.’하는 한탄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
가끔 너무 당연한 진리 하나를 잊고 지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모든 살아서 숨을 쉬는 것들은 길가에 피는 하찮은 개망초 한 송이까지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먹으며 크는 것이다. 하물며 세상 모든 만물 중에 최고라는 인간은 또 얼마나 그 사랑이 필요한가? 어린 아이 하나가 세상에 태어나고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그 아이는 장성한 어른이 된다. 하지만 장성한 그 어른이 얼마나 세상에 필요한 멋진 사람이 되느냐는 그저 세월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리라…….’
작은 홀씨 하나로 내 몸에 둥지를 틀고 그 속에서 적은 양분을 취해가며 열 달 동안을 버티다가 세상에 나온 사랑스런 나의 아들도 지금 일곱 살이라는 나이를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나와 남편의 인내와 수고를 필요로 했던가?
그리고 또 한 가지, 보이진 않았지만 늘 같은 곳에서 늘 한결같은 양분의 사랑을 부어주시며 지켜보셨을 그 분!
갑작스런 너무 많은 양분에 탈이 날까 걱정하시고, 더운 여름날 갈증으로 목말라 할 것을 아시어 때에 맞게 소낙비를 내리시는 하나님!
살면서 힘들고 지칠 때면 투정도 부려보고, 때론 반항도 했었지만 그래도 늘 요동하지 않으시고 날 감싸주셨던 내 아버지.
살아가는 동안은 생명이 있어서 호흡을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는 아니, 그 이후로도…….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그분의 사랑으로 크고 있는 것이리라.
“주여, 아버지 이 딸의 일생도 가는 걸음걸음이 당신의 사랑과 훈계가 양분이 되어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2008/07/12/ Copyright ⓒ 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