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세요!”_청소년상담
"도와주세요!”_청소년상담
  • 관리자
  • 승인 2008.12.1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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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세요!”

좌은아(명지대학교 대학원 청소년지도학과, 군포시청소년수련관 청소년 담당)

집단 따돌림을 당한 후 등교를 거부하고 있다는 중학교 3학년 강우진(가명)이라는 남자 아이에 대한 의뢰가 들어 왔다. 의뢰서의 사유만을 보면서 ‘피해의식에 가득차서 험상궂은 표정을 하고 있을 거야’라는 상상을 했다.
그 아이를 만나러 학교로 찾아 간 것은 아직 찬바람이 가시지 않은 봄이었다. 날씨가 꽤 쌀쌀한데도 불구하고 우진이는 하복을 입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창백한 피부의 얼굴과 마른나무가지 같은 팔이 하복 상의 밖으로 보였다. 초록색 이름표가 왠지 수형번호처럼 차갑게 여겨졌다.
진로인성부장 교사를 통해 새 학년 시작 후 처음 일주일가량은 학교상담실에만 앉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루 종일 1교시부터 6·7교시까지 학교상담실에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고, 점심급식도 선생님이 타다가 학교상담실에 넣어주었다고 했다. 우진이는 말을 하지 않는다. 고갯짓으로만 예, 아니오를 표시하고 있었다. 글씨를 아주 작게 붙여서 쓰고, 간간이 희미하게 무슨 일이 생각 난 듯 미소를 지었다.
두 번째 만나러 갈 때 방석을 선물 했다. 우진이는 방석에 앉아서 상담을 받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복이 춥지 않다고 생각되던 즈음, 우진이와 팥빙수를 먹으러 갔다. 차가운 것이 팔에 흘러 내려도 아주 느리게 천천히 닦아 낸다. 언젠가 하루는 이제 하루 종일 앉아있는 것이 견딜만하다고 말을 해준다. 그리고는 어른이 되면 자유로운 것 보다는 책임이 더 크고 무겁게 느껴질 것 같다고도 이야기를 한다. 말문이 트인 것인가? 함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는 우진이가 소리 내서 웃기까지 한다.
함께 길을 걷던 중 우진이의 신발 끈이 풀려 가던 길을 멈추고 끈을 묶으려한다. 어깨에 멨던 가방이 무거운지 끈이 늘어지자 고쳐 묶는 동안 신발주머니를 나에게 맡겨주었다. 그러다가 집에 갈 때까지 그 신발주머니는 내가 들어야 했다. 나에게 랩탑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지나가던 3학년 남학생이 웃으면서 인사하자 누구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그것이 우진이가 처음 하는 질문이었다. 이제는 웃기도 잘 웃는다. 상담을 시작 할 때도 인사대신 활짝 웃어준다.
학교 가지 않던 아이가 등교하고, 수업 들어가지 않던 아이가 출석하고, 아무 표정 없던 아이가 말로써 의사표현하고 소리 내어 웃는다. 지난 여름 눈에 띠는 변화가 발견되었고 세부 목표는 달성되어 나에게 온 의뢰는 종결되었다.
하지만 우진이에게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동기부여가 충분했는지, 환경에 대해 반응하는 기술은 습득되어졌는지, 비전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생활할 것인지, 그러니까, 살고 싶어졌는지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청소년들의 잠재된 가능성을 스스로 발견하게 한 것으로 위안 삼아도 될까? 우진이와 함께 걷던 교정이 생각난다.

2008/12/13/ Copyright ⓒ 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