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데스크] 투명인간의 그림자
[현장데스크] 투명인간의 그림자
  • 관리자
  • 승인 2010.08.1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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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은아 |
명지대학교 대학원 청소년지도 전공
군포시청소년수련관 학생상담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려 했지만 석영이의 말을 여과 없이 믿어준 것이 내 실수였다. 결국 내가 보고 싶은 각도에 들어오는 만큼만 아이에게 개입하고 말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봐서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1개월도 채 다니지 못하고 다시 학교를 그만둔 전석영(가명, 18세 남)은 자신이 직접 상담을 신청한 나의 두 번째 의뢰인이었다.
처음에는 맞았다고 했다. 학교화장실에서 2명의 동급생이 무릎을 꿇게 하고 발로 찼다고 했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패싸움이 붙어서 치고받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맞거나 싸웠다고 해서 모든 학생이 다 학교를 그만두지는 않는다.
석연치가 않아서 보호자를 만나 아이의 발달과정에서의 일들을 물었다. 초등학교 때 6년간 5번 전학을 다니느라 친구가 없었다. 석영이가 진술한 내용과 일치한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 있는 시간에는 집에서 나오지 않았으며, 밤늦게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가는 것이 외출의 전부였다. 한 가지 목표를 갖고 가야 했다. 그러나 어떤 연구를 찾아봐도 학교중도탈락 청소년은 복교를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이 지배적이었다. 석영이와 보호자의 요구와 필요를 감안해서 검정고시 학원을 다시 등록하게끔 했다. 아이는 중요과목은 과외도 하겠다고 했으며 헬스장도 다니기로 했다.
규칙적인 생활이 시작되었고 반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을 무렵, 석영이가 다시 이사를 간다고 했다. 그리고는 덧붙이기를 그동안 선생님을 속여 와서 괴로웠다며 자신은 인터넷 중독이라고 했다. 게임을 시작하면 멈추지를 못해서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프로게이머가 아닌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고 자기 신분을 철회 하면서까지 몰입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고열로 괴로워하는 학생에게 애정을 듬뿍 담아 힘껏 껴안아 준다 해도, 의지박약이라고 야단을 친다 해도 열은 내려가지 않는다. 어느 일본 작가가 쓴 에세이를 읽는 중에 위의 대목을 발견하고는 내 마음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중독은 의존증이라는 병이다. 나는 병원을 대체하지 못한 유사서비스만 제공한 셈이 되었다. 아무리 울어도 인터넷게임 속에 있는 석영이에게 나로서는 손이 닿지 않는다. 나는 아이를 놓아버렸다. 석영이가 처음에는 나를 찾아 왔지만 그 곳에서는 또 다른 전문가가 손을 뻗어 그 아이를 잡아주길 바랄 뿐이다. 석영아, 미안하다.
올해 병영생활 적응을 다룰 군 상담심리사 과정을 시작했다. 석영이를 비롯한 내 아이들이 이제 군 입대를 준비해야 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2010/8/10/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