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 평생직업!
평생직장? 평생직업!
  • 류태영
  • 승인 2010.09.1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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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영 박사의 VISION 이야기(16)

히브리대학 사회학박사
건국대 부총장 역임
농촌·청소년 미래재단 이사장

인생에 늦은 시기란 없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서 무슨 소용이냐” 라고 하지 말라. 지금이라도 외양간을 고치라.

대학에서 교양과목인 사회학개론 강의를 할 때였다. 강의를 듣던 영문과 한 여학생이 연구실로 나를 찾아왔다.
“교수님, 저는 대학을 졸업한 후 취직을 하는 게 목적인데 어떻게 하면 빨리 취직을 할 수 있을까요?”
당시 그 여학생은 1학년이었다. 나는 학생에게 할 수 있는 한 많은 자격증을 갖춰놓으라고 일러주었다. 영문 속기사, 영문 타자, 번역사 자격증을 따놓으면 취직이 쉬울 것이라고 했다. 졸업할 즈음 여학생은 자격증을 네 개나 따놓았고, 나는 그 학생을 제법 큰 이스라엘 회사의 한국지사에 추천하여 취직을 시켜주었다. 자격증을 네 개나 따놓았으니 취업이 쉬웠음은 물론 다른 사람보다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이 학생은 외무고시에 합격한 청년과 결혼해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대만으로 가게 되었다. 떠나기 전 부부가 인사를 하러 왔다. 나는 그들에게 외교공관에 가서 근무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한 공부를 해놓으라고 당부했다.
이후 조언대로 그녀의 남편은 대만에 가서 정치학을 공부하여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녀 역시 대학원에 입학하여 교육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남편이 북경대사관으로 전근 발령을 받았고 그 여학생 제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40대 후반에 북경대학교 중의학과에 입학, 자격증을 취득하고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마침내 한의사가 되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서 대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이미 교육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다시 의대 1학년에 입학한다는 것은 보통 결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여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 전문직업을 갖게 되었다.
자격증은 비단 젊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격증은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퇴직을 준비하거나 언젠가는 전직을 하겠다고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한 빨리 자격증을 취득해놓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자격증도 무조건 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 역량을 극대화하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이나 앞으로 할 일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것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따나마나한 자격증은 돈과 시간만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 즉,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인지, 그리고 돈이 되는 일인지, 관련된 경력을 쌓은 것이 있는지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J는 한국 대기업 건설회사의 임원으로 있던 중, 미국 괌 지사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해외근무 임기를 마친 후 귀국하려 했으나 아이들 교육을 위해 미국에서 살자는 아내의 강력한 권유로 미국에 남아 사업을 하기로 했다. 그는 퇴직금과 대출받은 돈을 전부 털어 작은 쇼핑센터를 지었고 관광객들을 상대로 의류, 액세서리, 영양제 등 여러 가지 선물용품을 파는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괌이 일본인과 한국인들에게 최고 인기 여행지여서 처음에는 제법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괌 비행기 추락사고가 일어나자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졌고, 대출이자도 갚지 못해 결국 전 재산을 투자한 사업체는 완전히 망하게 되었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J는 완전히 빈털터리가 된 채 가족과 함께 LA로 이사를 했다. 임시로 사촌 동생 집에 머무르면서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으나 이미 오십대 중반을 넘어선 그를 채용해주는 회사는 없었다.
‘차라리 그때 한국으로 귀국했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을 텐데….’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앞이 막막하기만 했다. 그나마 한때 직장동료였던 사람이 그의 성실함을 알고 동양인이 많이 사는 작은 아파트 단지의 매니저로 일할 수 있도록 소개해주었다. 아파트의 소유주는 미국인으로, 미국 전역에 수십 개의 임대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사업가였다.
J는 비록 월급이 적은 매니저였지만 성실하게 일하면서 아파트 수리를 해야 하거나 공사할 것이 있으면 직접 설계를 해서 공사를 하게 했다. 미국은 인건비가 비싸 사소한 것 하나만 고치려고 해도 비용이 만만찮은데 J가 이렇게 함으로써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러자 회사에서는 그를 인정하여 점점 더 크고 좋은 고급 아파트의 매니저로 일하게 했다. 보수도 괜찮은데다 본사에서 아파트는 물론 공과금까지 모두 내주어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 갔다.
그러나 그는 안주하지 않고 매니저 일을 하면서 시간을 내어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새로운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였다. 그는 일하는 시간 외에는 집에 오면 책상에 앉아 공부했다. 부인이 “다 늙어서 그런 거 따면 뭐하느냐. 아무 쓸모도 없는 거” 하면서 아파트 일이나 충실히 하라고 핀잔을 주곤 했다. 또 “당신은 자격증 따는 것이 취미냐?”고 놀리기도 했다.
사실 J는 자격증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공부하여 건축, 토목, 설계, 전기 등등 건설에 관한 자격증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J는 부인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공부를 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전기, 배선, 에어컨 등의 자격증을 하나하나 취득해갔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종합건축기사 자격증도 마침내 취득했다. 그가 종합건축기사 자격증을 딴 지 채 일 년도 못 돼 갑자기 본사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하루아침에 본사로부터 해임통보를 받은 그는 그날로 일을 그만둬야 했다. 한 달 후에는 회사에서 제공해 준 아파트마저 비워줘야 했다. 그러나 J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본격적으로 할 기회가 왔다며 잘됐다고 생각했다.
마침 미국에는 리모델링 붐이 일어나면서 그의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았다. 건설회사는 많으나 막상 그처럼 여러 개의 자격증을 모두 갖추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작은 공사는 특별히 기사자격증이 없어도 됐지만 공사비가 비싼 고급 주택이나 건물 공사에는 반드시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있는 회사는 다른 업체보다 더 많은 비용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J는 건물 공사나 건축에 관련된 여러 가지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건설회사에 들어간 일 년간 실전 경험과 인맥을 쌓기 시작했다. 혼자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기자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건축회사를 차리고 신문과 전화번호부에 광고도 내면서 정식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건축에 관한 거의 모든 자격증을 갖추고 있는 그는 상담에서부터 인테리어 마무리까지 모두 철저하게 관리하였기에 고객들도 매우 만족해하며 그를 신뢰했다.
J의 회사는 점점 소문이 나서 크고 작은 집과 건물, 식당, 쇼핑센터 등을 리모델링 해달라는 주문이 밀려들었다. 그는 최근 LA 근교에 있는 헌 집을 사들여서 완전히 새롭게 리모델링하여 이사를 했다. 그는 말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공사를 해왔지만 이제껏 해온 공사 중 가장 훌륭한 공사는 자신의 허물어진 인생을 리모델링한 것이라고.
나이 들었다고 안주하거나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있는 자리에서 미래를 내다보며 노력하면 얼마든지 당신의 삶을 리모델링 할 수 있다.

2010/9/10/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