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의 가치관
독일 통일의 가치관
  • 관리자
  • 승인 2010.09.1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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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숙 (여명학교 교감)

여명학교에서 북한이탈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이 있다. 그러나 그 보람만큼이나 힘이 들기도 하다. 남북한 간의 체제차이와 또 그 벌어진 역사의 틈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아기와 성장기에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던 북한이탈청소년들은 애정결핍과 자극에 대한 반응의 정도를 알지 못하여 작은 일에 예민해 하거나 큰 충격에 반응을 하지 않는 등 남한의 학생들과 다른 양상들을 보여 가르치면서 에너지가 많이 들었다.
교사들에게 희망을 보여주며 미래를 품고 가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희망과 꿈을 심어주기위해 학생들과 또 그들의 환경, 문제, 의지, 습관들과 싸워내며 가르쳐야 했다.
지치고 힘이 들었던 나는 우리의 미래를 살아가고 있는 현장인 통일 독일을 경험하고 싶어 작년 8월 독일로 향하였다. 통일 전 동독지역이었던 동베를린은 통일된 지 2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동독은 ‘건설 중’이었다. 독일 통일의 시발점이 된 옛 동독지역의 니콜라이 교회와 알렉산더플랏츠에 가서 전시된 통일 현장의 사진들을 보니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꿈같은 장면이 현실로 찍혀있어 부럽고 부러웠다.
또 지금은 화랑이 되어있는 베를린 장벽과 통일박물관들을 보며 남북한처럼 애절한 분단의 아픔이 느껴져 마음이 숙연해졌다. 우리에게는 한 줄의 역사로 표현되는 것들이 당사자들에게는 죽음보다 더 잔인한 고통의 긴 시간들이었음에 민망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리고 사람에 관심이 많은 나는 독일을 방문하여 거리를 지나다니는 동독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내가 처음 중국에 가서 본 탈북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1997년 당시 내게 다가온 북한형제들의 얼굴은 공포와 긴장이 흘러넘쳐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공포감은 아무리 안심을 시키거나 정성을 다해 안아주어도 수그러들지 않아 안타까웠었다. 그런데 내가 본 동독사람들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고 안정감까지 느껴졌다.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또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베를린 장벽이나 국경을 넘었던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동독사람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긴장감은 전혀 없었다.
나는 힘들어도 일을 해야 하는 가치를 하나 더 발견하게 되었다.
한국에 도착하여 독일에서 못 만난 아데나워재단의 발러스 부사무총장의 연설을 듣게 되었다.
그는 “한국사람들은 독일통일에 대해 모두들 통일비용에 대해 물었습니다.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독일통일은 경제기반적인 행동이 아니라 가치기반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비용을 따져서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형제들이 원하지 않고 선택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서독이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통일이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통일독일은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혼란과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는 우리 세대에서 통일을 하여 혼란과 어려움을 다 이겨내면 우리의 자손들은 성장만 해도 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런 환경을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우리가 반드시 물려줘야 할 위대한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연설을 들으며 나는 동독사람들에게서 받은 충격과 또 다른 충격을 받게 되었다. 우리는 통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비용부터 생각하게 되고 그 엄청날 것 같은 쏟아 부음에 기겁하여 통일을 외면하였고 국내입국 북한이탈주민을 지원할 때도 우리의 세금으로 왜 그들을 먹이느냐며 따지곤 하였다. 우리세대에서 겪을 일들을 생각하여 통일을 미루거나 외면하는 것이다.
나는 발러스 부총장의 말을 되새기며 좋은 부모라면 자신이 어려움을 모두 겪고 아이들에게는 좋을 것을 물려주도록 해야 하는데 과연 우리는 좋은 부모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또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상황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함께 감당하면서 시작된 독일 통일이 무척이나 부럽고 또 부러웠다.

2010/9/10/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