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인간의 일생을 비유적으로 바라본 성장소설'
[Book]'인간의 일생을 비유적으로 바라본 성장소설'
  • 관리자
  • 승인 2011.02.05 22: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순원 장편소설 『나무』

문학에디션 뿔 / 이순원 지음


작가 “이순원”하면 자전적 성장소설『19세』를 떠올리는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99년에 처음 발표했던 『19세』가 재작년에 다시 개정판이 나왔을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어지며 아련한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 대표적 성장소설이었으니까….
그의 작품『나무』역시 자신의 할아버지 이야기에 바탕을 두었다는 점에서 자전적 소설이며, 그 할아버지가 백 년 전쯤 시골집 마당에 심은 백 살쯤 된 밤나무와 손자 밤나무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소설 역시 나무의 일생을 통해 인간의 일생을 비유적으로 바라다본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열세 살에 결혼한 어린 신랑은 그해 흉년이 들어 몹시 굶주렸음에도 밤 다섯 말을 부엌 바닥을 파고 묻었다. 그보다 한 살이 어린 신부는 그런 신랑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의 말에 순종했다. 그해 겨울, 그들은 식량이 부족한 채로 배고픔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봄이 왔다. 봄비로 온 산 흙이 촉촉하게 젖었을 때 어린 신랑과 신부는 그 밤 다섯 말을 나무가 베어진 민둥산에 정성껏 묻었다. 그리고 다음날 신부는 밤을 담아 갔던 소쿠리 한 귀퉁이에서 작은 감자만큼이나 굵은 밤 한 톨을 발견했고 그것을 부엌 바깥마당에 정성껏 심었다. 먹을 것도 없는 흉년에 귀한 밤을 먹지 않고 심는다고 동네사람들은 어린 신랑을 비웃었지만 세월이 흐른 후에 어린 신랑은 그 밤나무에서 딴 밤만으로도 동네에서 가장 잘 사는 부자가 되었다.
아직은 이른 봄, 바람이 찼지만 매화나무는 마당 안팎의 식구들 가운데 가장 먼저 깨어서는 양지쪽 언덕의 생강나무, 산수유, 살구, 앵두, 복숭아나무가 한바탕 부산을 떨었지만 아랑곳없이 이른 첫 꽃을 피웠다. 한 해의 첫 꽃답게 눈처럼 희면서도 연한 분홍빛을 띤 화사한 매화꽃을 작은 나무도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느닷없이 닥친 꽃샘추위와 눈 속에 매화나무는 어느 것이 꽃이고, 눈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작은 나무는 “며칠만 늦게 꽃을 피웠으면 저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텐데….”하고 할아버지 나무에게 매화나무가 어리석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할아버지 나무는 “매화나무는 저 모습 그대로 눈과 추위 속에서도 당당하게 꽃을 피울 때 가장 매화다운 거란다. 꽃샘을 피하려고 늦게 피어난 매화꽃엔 아무 열매도 안 열리지.” 라며 부드럽게 작은 나무를 타일렀다. 작은 나무는 매화나무를 시샘한 것이 부끄러워졌고 모든 나무가 각자의 시기에 맞게 꽃을 피워야한단 걸 알게 되었다. 또 시작은 늦더라도 더 알차게 채워가는 나무들도 많이 있단 걸 알게 됐다.
작은 나무도 어느덧 열매를 준비할 시간이 됐다. 지난 해 난생 처음 맺은 열매를 가을이 되기 전 모두 잃어야 했던 작은 나무는 올해는 최대한 많은 꽃을 피워서 많은 열매를 맺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피울 수 있을 만큼 많은 꽃을 욕심껏 피워냈다. 작은 나무는 많은 피곤함을 느꼈다. 오랜 장마와 거센 태풍이 지나는 사이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많은 열매들이 할아버지 나무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다 떠나갔다. 지금 작은 나무에게 달린 열매는 딱 두 개뿐이다. 자신의 꽃과 열매에 대한 과욕이 정작 마지막 남은 열매를 지켜내는데 오히려 해가 됨을 뒤늦게 알게 됐다. 가을이 무르익고, 어느덧 작은 나무의 밤알도 할아버지의 밤알 못지않게 굵어졌다. 며칠 전부터 작은 나무는 자신의 첫 열매를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주워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나무가 아람을 가장 크게 벌리던 날 이집의 아들 내외가 어린 손자를 데리고 시골집에 내려왔다. 작은 나무는 그 어린 손자에게 자신의 열매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작은 나무의 그런 바람을 알기라도 한 듯이 어린 손자는 작은 나무의 첫 열매의 주인이 되었다. 작은 나무는 가슴이 몹시 뛰었다. 이제 작은 나무는 언제까지나 그 어린 손자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어린 손자는 시골집에 올 때마다 작은 나무를 살피며 정다운 말을 건낼 것이었다. 이제 작은 나무는 올해보다 더 힘차고 꿋꿋하게 자신의 밤송이를 비와 모진 바람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나무』를 읽으면서 작가의 말중 <“작가로서 어떤 글을 썼으면 좋겠냐?” 는 질문에 “내 글에 몸을 바칠 푸른 나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썼으면 좋겠다”> 라고 답한 이순원 그가 자신의 말에 책임을 다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라 생각해본다.

이은희 객원기자
2011/02/05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