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복지는 벽을 넘는 것
[오피니언] 복지는 벽을 넘는 것
  • 관리자
  • 승인 2011.09.1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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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제일교회 부목사 백은성

같은 장소에 살아도 시대가 다르면 삶의 방식이 다르고, 같은 시대를 살아도 장소가 다르면 문화가 다르다. 다른 문화가 많이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어도 막상 살아보지 않으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미국 LA 근교에 살다 귀국하면서 이런 문화의 차이를 경험했다.

우리는 대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사람들을 친척을 포함한 가족(Family), 이웃(Neighbor), 남(Stranger)으로 분류한다. 이 세 부류 사이에는 담 또는 벽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가족과 이웃을 나누는 첫째 벽과 이웃과 남을 나누는 둘째 벽이 그것이다. 이 두 벽은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되기도 하고, 우리가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데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두 벽 중에서 한국인들은 이웃과 남을 나누는 둘째 벽이 두꺼운 반면, 미국인들은 가족과 이웃을 나누는 첫째 벽이 두껍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이웃과 매우 친하다. 그래서 이웃과 아이들이 함께 노는 것을 넘어 심지어 아이들이 이웃집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잠을 자기도 한다. 아이들 생일이나 명절에 함께 모여 축하하며, 휴가를 함께 보내기도 한다. 많은 경우 멀리 떨어져있는 형제나 부모보다 이웃이 더 가까울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말에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타국이라서 그런지 한국인 이웃과 좀 더 친밀하게 지냈다. 이런 사실은 미국인들이 부러워하는 것이고, 내게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웃과 남 사이의 둘째 벽이 두꺼워서 그랬는지 아무래도 길거리나 아니면 이웃이라도 내가 생각하기에 남이라 여겨지는 사람들과는 대화를 나누기 어려웠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이웃과 남을 나누는 둘째 벽이 두껍지 않고 얇았다. 그들은 학교나 상점, 관공서,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친절하게 인사하며 친밀감을 보였다. 타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음에도 꿋꿋이 지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인들이 보여준 여유와 친절 덕분이다. 자기들이 보기에 너무 당연하고 쉬워 보이는 질문에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고, 말에 익숙하지 않아서 미안할 정도로 여러 번 물어도 똑같이 대답해주었다. 나는 감동하였고, 이런 문화가 부럽기도 하고, 우리도 그랬으면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처음 만난 피부색 다른 외국인에게 친절을 보이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에 온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홀대하는 이야기들을 우리는 많이 듣는다. 반면에 미국인들은 가족과 이웃의 첫째 벽이 두꺼웠다. 우리 아이들이 옆집에 사는 미국인 친구들과 잘 놀았어도,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부모들이 선을 그었다. 친하게 지냈음에도 서로 가정을 열어 맞이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동양인인 우리에게뿐 아니라 미국인들끼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분명히 벽은 있었고 그 벽의 두께가 문화마다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외국에서 지내야 했기에 많은 짐을 종이상자에 넣고 보관하였다. 돌아와 보니 책이나 옷, 가방 여러 군데에 심하게 곰팡이가 피었다. 우리나라 날씨가 좀 더 비가 많은 기후로 변해서 그렇다고도 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부직포로 싸놓았던 옷은 멀쩡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분명히 싸여있었음에도 부직포는 필요한 공기가 통했기에 곰팡이가 피지 않았다. 고대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던 요셉의 복은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자기를 미워했던 형들의 벽을 넘었다. 더 나아가 민족을 넘어 이집트로, 고대 근동 모든 사람에게로 향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향해 “그 가지가 담을 넘었다”고 유언하였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그런 것이 아닐까. 가족과 이웃 사이의 벽, 이웃과 남 사이의 벽, 그리고 여러 종류의 다른 담과 벽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벽이 있음에도 벽이 보호막은 되지만 장애물이 되지 않는 사회! 복지는 그러기에 벽을 넘는 것이다. 장애와 노년, 피부색과 빈부의 차이가 벽이 되지 않는 사회, 아니 벽이 있음에도 좋은 복들이 그 벽을 넘어서는 사회! 그래서 우리가 받은 복이 나눔이 있기에 더욱 풍성해 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1/09/17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