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복지] 첫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해외복지] 첫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 관리자
  • 승인 2011.11.19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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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로 걷는 두번째 인생길’연재 ②]
김유민 사회복지사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미국 이민 후 사회복지사가 되어 겪은 10년동안의 에피소드를 보내왔다.


현재 로드아이랜드 에서 호스피스 사회복지사 김유민


이웃을 돕는 일에 헌신적이었던 P할머니와의 만남

졸업과 동시에 가진 직장생활은 지난 2년의 생활과는 너무도 다른 도전이었습니다. 넉넉지 못한 생활에 한 달이라도 더 기다릴 수가 없어서 졸업 3개월 후부터 직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선택의 여지없이 들어간 첫 직장은 노인아파트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120개의 아파트에 사는 저소득층 노인들의 복지와 그들의 삶을 도와주며 미국사람들의 생활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주정부와 시에서 65세 이상의 저소득층 노인 분들에게 여러 혜택, 이를테면 식권, 의료혜택, 무료급식, 무료 버스 지원과 주민회의, 여러 축하 기념행사 등 참으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정말 정신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하면서 그들의 다양한 생활양식과 삶을 가까이서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미국사람들의 생활공간에서 일하는 것이 처음이라 늘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던 이 곳에서, 잊을 수 없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고양이 ‘스타’를 데리고 홀로 사시는 P라는 할머니입니다.

70대 초반의 이 할머니는 하반신 신경마비로, 모토로 조정하는 휠체어 같은 스쿠터를 항상 타고 다녔습니다. 새로 온 나에게 이전 사회복지사가 했던 일, 빌딩에서 알아야 할 일 등을 자세히 알려주시고, 아침마다 사무실에 들러서 지난 밤 주민들의 동향이나 변화에 대해 이야기도 해주시며 2년 여 동안 저의 도우미가 되어주셨습니다. 또한 주민회의 회계로 일하며, 빌딩의 사소한 일 등 그 불편한 몸으로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움직이지 못하는 이웃의 다리역할까지 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저녁, 빌딩 관리인으로부터 급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P할머니가 이날 오후, 스쿠터를 타고 근처에 쇼핑을 하고 돌아오다가 아파트 앞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여 바로 응급실로 옮겼지만 그만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관리인 할아버지는 P 할머니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할머니는 백인 유대인으로 결혼하여 두 딸을 낳고 행복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50세경에 갑자기 닥친 신경마비로 가족에게 버림을 받고 혼자 이곳 노인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답니다. 얼마 후, 혼자 사시는 외로운 한 흑인할아버지를 만나 재혼하자, 가끔씩 방문하던 두 딸들마저 완전히 연락을 끊고, 유대인의 명부에서도 출교를 당했답니다. 그러나 몇 년 후 이 할아버지마저 갑작스런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자, P할머니는 거의 한달 이상 집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할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셨답니다. 빌딩의 한 할머니가 P 할머니의 소식을 전해 듣고 한 고양이를 가져왔고, 이후로 다시 힘을 얻어 삶을 시작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관리인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니 할머니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게 여겨졌습니다.

P 할머니는 가족과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터라 장례식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곳의 법대로, 신문에 가족을 찾는 공고를 얼마간 내놓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가족이 나타나지 않아 조촐하게 할머니 할아버지 몇 분과 빌딩 관리인, 그리고 저, 이렇게 10여 명이 함께 모여 할머니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장례식을 마쳤습니다.

모든 것이 다 마무리 되고, 할머니의 아파트를 정리하려고 할 즈음 작은사위라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슨 TV 방송의 PD라며 지금까지의 일을 보고해 달라고 하면서 아파트에서 며칠을 묵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사고보상금으로 나온 2억 여원 을 챙겨서 급히 떠나버렸습니다. 저는 가족들의 매정함에 무척이나 화가 났습니다.

할머니를 생각하니 앞으로 그 분의 도움 없이 어떻게 할지 염려와 그리움에 며칠간 밤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할머니가 이제 좋은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사랑하며 지낼 것이라는 생각에 나의 도우미를 기쁘게 보냈습니다.

P할머니의 죽음이후 이 빌딩의 주민들은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다들 자신의 삶을 잘 살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웃을 돕는 일에 헌신적이셨던 P 할머니를 통해 마음으로 섬기고 나누는 일에 온 힘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김유민
1978-1982년 서울여대 사회사업과 졸업
1997-2000년 뉴욕신학교 교육학 석사
2000-2002년 뉴욕주립대 사회복지석사
현재 로드아이랜드에서 호스피스 사회복지사로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