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복지하는 기업·복지하는 사람
[INTERVIEW] 복지하는 기업·복지하는 사람
  • 관리자
  • 승인 2011.12.2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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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을 향한 청진기에는 사랑 고픈 소리가 난다”

-서울역 다시서기진료소 최영아 원장

교육, 문화, 의료 등 전문성을 가지고 이웃과 사회를 위해 헌신한 여성들에게 한국YWCA가 매년 ‘한국여성지도자상’을 수여하고 있다. 10년 동안 노숙인의 온전한 가족이 되기를 꿈꾸며 살아온 서울역 노숙인진료소 ‘다시서기’의 최영아 원장(41)이 지난 9월 8일, 9회째 진행된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노숙인들과 만나다
그녀에게서 ‘노숙인들에게 가족이 되어주는 삶’이 무엇일까? 그녀를 만나러 가는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물음이었다.

서울역 4호선 13번 출구를 나오면 서울시가 지정한 노숙인 무료급식소가 있고, 그 옆으로 여성 노숙인을 위한 마더하우스와 다시서기 진료소가 나란히 서 있다.

2층 한국누가회 사무실에서 만난 그녀의 화장기 없는 모습이 마치 가을 들녘 하늘하늘 착하게 웃고 있는 코스모스를 닮았다.

이화여대 의예과 재학당시 한국누가회에서 훈련받고, 졸업 후 2001년 2월 내과 전문의를 취득한 최영아 원장은 다일천사병원과 요셉의원에서 노숙인을 돌보면서부터 그들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2004년 무료진료소로 문을 연 다시서기의원이 2009년 요양기관으로 등록하여 성공회의 운영주체로 서울시에서 위탁받아 진료를 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그룹홈에서 그들을 돌보면서 오히려 자신의 삶이 변화했노라고 감사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진정한 의사가 되고싶어…
그녀는 의사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의사를 위해 환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위해 의사가 있습니다. 어쩌면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은 진짜 환자 옆에 있어주는 것이 의사이고 그럴 수 있는 곳이 내과라고 생각했습니다. 노숙인들이 바로 그런 상태에 놓인 환자였고 노숙인 때문에 내과 전문의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깨진 가정을 돌보다가 자신의 가정이 파탄 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고, 큰 문제를 안고 있는 한 사람 때문에 공동체가 깨진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내칠 수도 거절할 수도 없는 갈등과도 싸워야만 했다.

유치원생과 중학생 남매를 둔 최 원장은 지금이라도 당장 남편이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 둘 수밖에 없지만 다행스럽게도 한국누가회에서 만나 같이 훈련받은 그들 부부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지혜자 들이었다.

사랑에 목마른 노숙인들
알코올 중독, 성폭행으로 인한 여성 노숙인들의 끊임없는 임신과 낙태…….

2004년 이후 노숙인증이 발급되어 국공립의료센터에서 무료진료도 받을 수 있고 입원과 수술은 물론 40여개의 노숙인 시설에서도 지낼 수 있게 됐지만 노숙인을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남자 노숙인들은 혼자 생활하는데 익숙해져 시설에서의 단체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곳저곳 시설들을 다니다가 정착하게 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고 떠도는 노숙인은 결국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현실은 참으로 가슴 아픈 소식이었다.

노숙인들의 재활을 위해 재워주고 먹여주고 일자리를 주고 공부할 기회를 주고 무료병원까지 운영하는 일은 모두 노숙인들을 ‘노숙인’으로 잘 살 수 있게 할 뿐이다.

최영아 원장은 노숙인들에게 돈과 함께 자활을 위한 일자리는 꼭 필요한 요소기는 하지만 지난 10년간 노숙인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그들에게 필요한건 이웃이고 가족이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마더하우스에는 지난 11월 7일 예쁜 딸을 출산한 45살의 산모가 있었다. 그 산모는 강남의 꽤 넉넉한 가정에서 미술을 전공해 그 분야의 일을 하던 분이었는데 고3때 성폭행을 당한 이후로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가족들로부터 온전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결혼했지만 또다시 버림받게 되고 노숙인으로 생활하며 임신하게 되어 마더하우스에 입소하게 된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가족들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한 그녀가 자신의 아이에게 똑같은 환경을 되돌려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족이 되어야 그들은 변한다
지난 10여 년간 청량리와 영등포 그리고 현재 서울역에서 만난 노숙인 중에는 사장이나 교수, 의사들도 있었다며 “노숙인은 어느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다시서기사역부의 마더하우스 책임자인 여 간사의 이야기를 꺼낸 최 원장은 “지난 날 여러 차례 가출을 시도하고 가족으로부터 도망치려고 몸부림쳤지만 끝까지 가정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는 엄마가 있어서 자기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며 가출하고 돌아오면 아무 말 없이 안아주었던 그 엄마의 마음으로 노숙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으니 성민원의 권태진 이사장께서 늘 “속썩여도 좋으니 붙어만 있어라.” 고 하신 말씀과 “설교나 삶으로는 주변의 사람들을 반 정도를 변화시킬 수 있지만 함께 살아 가족이 되면 90%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신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최영아 원장은 마더하우스와 다시서기의원을 드나드는 노숙인들이 사회로 돌아가 완전하게 생활하도록 돕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다 내어주고 ‘내 것’을 중심에 두지 않고 ‘그 사람’을 중심에 두고 사는 그녀의 삶이 내 가족과 내 이웃을 사랑으로 잘 돌보지 못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것이 아까운 나 자신을 참으로 부끄럽게 만든다.

2011/12/24/ Copyrightⓒ경기복지뉴스
오인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