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 장애인 교수
[VISION] 장애인 교수
  • 관리자
  • 승인 2011.12.24 1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정욱 교수
소설가, 아동문학가

‘31303’. 내가 강의를 해야 할 문과대학 강의실의 번호였다. 3층에 있었지만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과대학 건물 바깥에는 꽃샘추위가 몰아치고 있었지만 몸은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조교실에서 오후 1시 국어작문 강의 시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면서 거듭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어려서 소아마비에 걸려 1급 장애인이 된 나는 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의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했다. 그러나 대학 진학을 앞둔 어느 날, 의대에서는 나 같은 장애인을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것은 충격이었고,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이었다. 의대, 공대, 자연대, 어느 대학에서도 장애인은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들어오게 된 것이 국문과였다. 어려서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국문과에 들어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들어온 학과였지만 들어와서 보니 공부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재미있었다. 어려서부터 그토록 좋아했던 책을 읽고, 토론하며, 문학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대학을 다니면서 나는 문학의 즐거움에 빠졌고, 결국 작가의 꿈을 키우면서 대학원을 다녔다.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무리할 때까지 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교가 들어와 공지사항을 말했다.

“다음 학기에는 박사과정 수료한 사람들이 강의를 하나씩 맡았습니다. 조교실에 오시면 시간표가 배정되어 있을 거예요.”

그때만 해도 국어강독이나 국어작문이 교양과목으로 있어서 대학원 박사과정쯤 다니면 강의를 어렵지 않게 맡을 수 있었다. 비록 강의 시간은 두 시간이지만, 앞으로 교단에 설 사람들에게 미리 경험을 쌓게 해준다는 의미였다. 나 역시도 강의를 맡을 수 있을까? 가슴이 설레었다. 그때 조교가 다가와 나에게 넌지시 말했다.

“고 선생님은 몸이 불편해서 교수님들이 강의 배정을 못하셨어요.”
청천벽력이었다. 강의 배정을 못 받다니. 학교에 있는 교수들은 내게 한 번 의사확인도 하도 않고 강의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다. 크나큰 배신감이었다. 국문학을 공부하면서도 이런 좌절을 또 겪어야 하다니. 모든 기대가 무너지는 듯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당장 떨쳐 일어나셨다. 차별 받는 아들을 위해 지옥이라도 가겠다는 각오로 교수들을 쫓아다니며 읍소하셨다.

“우리 아들이 강의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한 번이라도 기회를 주시고 판단해 주십시오, 교수님.”

아버지의 읍소가 통해 결국 학교에서는 나에게 새 학기에 강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리하여 맡게 된 강의가 국어국문학과 1학년 학생들이 듣는 국어작문이었다. 내가 국문과 출신 선배이기에 학생들이 별 거부감 없이 나를 받아들일 거라 생각한 듯했다.

드디어 수업 시간이 되어 나는 목발을 움직여 3층 강의실로 힘겹게 올라갔다. 나의 가슴은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설렘이 극에 달한 것이다. 학교에 들어온 지 8년 만에 강단에 처음 선 감회가 정말 새로웠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학생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목발 짚은 장애인 교수가 들어오니 그럴 수밖에. 긴장해서 갈라지는 목으로, 나는 설레는 가슴을 누르며 말했다.

“여러분에게 국어작문을 한 학기 동안 가르칠 고정욱 입니다.”

의자를 끌어다 교단 위에 놓고, 나는 거기에 앉아 출석을 부른 뒤 강의를 시작했다. 첫 강의를 하는 설레는 가슴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선명한 것은 누구보다 훌륭한 강의, 누구보다 뛰어난 강의를 하고야 말겠다는 각오였다. 장애가 있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선 결코 문제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 때문일까, 그 후로 나는 학교에서 강의평가를 하면 항상 정상급에 있는, 인기 있고 학생들에게 성심을 다하는 강사로 인정을 받았다.

그때 시작한 강의를 20년 넘게 했고, 수없이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제자 가운데에는 구청장을 비롯해 이 사회의 기간 인력이 된 사람도 있고, 대학교의 교수가 된 인물도 있으며, 작가가 된 이들도 물론 있다. 선생으로서 그들에게 미력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할 따름이다.

지금도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을 가르치려 떨리는 가슴으로 목발을 짚고 강의실로 찾아가던 나의 모습이 생각난다. 가슴 떨리는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면 어느 누가 자기 일에서 열정을 상실할 것인가. 그것은 장애와 비 장애를 떠난 것이다. 열정의 문제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