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VISION]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 관리자
  • 승인 2012.06.0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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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파나 방사능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한 존재다



김민철 원장
G샘통합암병원



세계보건기구(WHO)가 휴대전화로부터 나오는 전자파를 공식적으로 암을 발생시킬 수 있는 위험요인으로 분류했다. WHO 산하의 국제암연구소가 휴대폰 사용과 뇌종양 발생에 대한 그 동안의 연구 결과를 검토하여 상관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인데….

지난 해 일본에 발생한 쓰나미 피해로 원전에서 방사능이 누출되어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뉴스들을 접하면서 문득 1996년의 체르노빌을 여행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소련이 붕괴되기 전인 1986년 4월 26일에 폭발했다. 당시 소련 정부는 직경 50Km 안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소련의 광활한 땅 이곳저곳으로 분산 이주시켰다. 원전 폭발이 인체에 미치는 장기적인 피해에 대해 조사 자체를 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주민들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한 고향, 삶의 터전을 버려야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방사능 때문에….

그로부터 10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 우크라이나 땅에 놓인 체르노빌을 찾았다. 한국인(까레이스키) 후손들의 방사능 피해를 조사하고 동시에 폭발 사고 1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학술대회를 마치고 참석자 일행은 폭발한 원전을 직접 관찰하기 위해 밀폐된 버스를 타고 체르노빌에 들어갔다.

원전 폭발 이후 폐허가 된 도시 체르노빌을 바라보는 것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유령의 집에 들어온 듯 스산한 느낌을 주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차안에서 우리는 죽음의 도시 안에 덩그마니 서 있는 잿빛 시멘트 건물들과 깨진 유리창 사이로 우리 눈에 들어오는 아파트 안의 풍경 등 을씨년스럽게 변해 버린 사람 살았던 흔적들을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원흉이었던 방사능은 어디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기에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슬그머니 들어와 산다고도 했다. 그래서 여기서 재배되었을지 모를 딸기, 버섯에 방사능이 많으니 조심하라고들 했다. 다행히 폭발 후 바람의 방향이 북쪽으로 향해서 우크라이나 땅에 거주하던 까레이스키들에게 피해는 별로 크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Cancer”라는 학술지에는 원전 폭발 사고 6년 후 벨라루시의 수도 민스크에 있는 병원에서 소아 갑상선 암의 발생이 100배 증가했다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바람의 방향 때문에 원전의 북쪽에 위치해 있던 벨라루시에 그 피해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이윽고 체르노빌 원전에 도착하자 안내자는 우리 일행에게 잠깐 동안의 하차를 허락했다. 나를 포함한 몇 사람은 이 체르노빌 원전을 배경으로 방문 기념사진을 찍은 뒤 안내자의 말대로 곧 밀폐 된 차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차창을 통해 보니 아직 상당수의 학자들이 계속 밖에 머물며 사진을 찍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구경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차 안에서 한 외국인 물리학자가 가져온 방사능 측정기(Geiger Counter)로 잠깐 이곳 땅을 밟았던 신발에 방사능 물질이 묻었는지를 측정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측정기를 신발 쪽으로 가져가자 이 기기 고유의 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가까이 갈수록 소리가 점점 커졌다. 신발에 닿을 정도가 되자 ‘따따따따’하는 소리를 낱개로는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연속음이 되어 들려오는게 아닌가! 우리 모두는 놀란 눈을 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다시 와 보기 어려운 현장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차안으로 들어오도록 차창에 대고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말만 옳다고 생각하는 합리주의자들은 아마도 볼 수 없는 것도 존재할 수 있음을 믿지 못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방사능을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누구도 합리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체르노빌에 온 과학자들마저도 여전히 보는 것만이 믿을 수 있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아적 합리주의의 원칙만을 굳게 믿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사진 찍기와 호기심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방사능의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도록 마비시켜 버렸던 것이다. 전자파도, 방사능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존재하며 암을 일으킨다. 아니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한 존재이다.

죄의 열매처럼, 아니면 반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소망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믿음이 없는 세대를 향해서는, 때로 방사능 측정기처럼 시끄러운 소리라도 내서 증거를 제시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히브리서(11:1)는 말하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하였거늘….

2012/06/09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