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 Everywhere Toilet
[VISION] Everywhere Toilet
  • 관리자
  • 승인 2012.07.2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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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원장
G샘통합암병원


‘백문이 불여 일견’이라 했거니와, 1994년, 우리가 르완다(Rwanda) 난민들을 돕기 위해 자이레(Zaire, 지금의 콩고) 동북부의 키부(Kivu) 호숫가인 블렝가(Blenga) 지역에 도착해서 금새 체험으로 깨달은 진리 중 하나는 의과 대학에서 배운 ‘예방’의 중요성이었다.
우리가 도착하였을 때는 「뉴스위크」의 표지를 수 만명의 어린아이 시체로 슬프게 장식했던 콜레라는 좀 수그러들어 있었으나, 오히려 혈변을 보는 이질은 더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우리가 세운 천막 진료소 앞에는 아침부터 이런 환자들로 장사진을 이루었고 행여 순서를 놓칠 새라 적도의 뜨거운 태양 빛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몇 시간씩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들을 나무 그늘 밑으로 유도하기 위해 주위의 커다란 고목 나무 마다에 병명(설사, 말라리아, 기생충) 팻말을 써 붙여두고 환자를 분산시키게 한 반짝 아이디어는 지금 생각해도 기발했던 것 같고 아무튼 이 문제 해결에 숨통을 터주었다.

그러나 혈변을 보는 환자의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화장실이 따로 없었고 그렇다고 한 장소에서만 대변을 보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전 국토의 화장실화, 영어로 하면 Everywhere Toilet 쯤으로 보면 되는 문제 때문이었던 것이다. 파리는 들끓고 아이들의 몸에 시커멓게 붙은 파리를 쫓을 생각도 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질 설사가 그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건축(?)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 머나먼 땅 아프리카까지 성수대교가 무너졌다는 자존심 무너지는 소식을 통역을 맡은 현지인 벰바를 통해 전해 들은 터여서 대한민국의 자존심 만회도 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깊이 2 미터의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기둥을 세운 뒤 바나나 잎과 줄기를 엮어 칸막이와 천정을 만들었다. 그러나 최소한 발 디딤 부분은 판판한 판자가 필요했고 이것도 인건비에 비하면 정말 비싼 돈을 주고 여기저기서 어렵게 구입하여 드디어 몇 동의 화장실을 완공하였다. 이 건축에 참여했던 고용인들과 건축주(?)인 우리는 이 현대식 화장실 앞에서 완공 기념 촬영과 함께 마치 신차 시승식이라도 하듯 시용변식(?)까지 거행하였다.

이로써 성수대교가 무너질 정도의 건축술로 국제 망신을 당한 우리나라의 자존심이 좀 회복되었는지는 아무도 말을 해주지 않아서 확인해볼 수는 없었지만, 이 일은 난민들에게 전염병은 예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교육적인 효과가 충분히 있었다. 우리가 고용한 르완다인 간호사들을 통해 그 흔한 물(키부 호수를 끼고 있는 지역임)로 손발을 잘 씻고, 물을 끓여 먹도록 난민들을 교육하는 등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 시발점이 되었다. 우리들의 Everywhere Toilet을 없애려는 노력의 결과인지(?) 10월이 되면서 콜레라에 이어 이질도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UN난민 고등판무관실의 의료조정관실에 매 주 보고 되는 자료에 의하면 우리가 담당했던 블랭가와 촌도(Tshondo) 난민 지역이 이로 인한 사망율이 다른 곳보다 적다고 발표되기도 했다.

30여일이 지나자 형편없는 식사와 휴식의 부족, 아무런 훈련 과정도 없이 외인 부대처럼 처음 만나 아프리카에 온 봉사단 10명이 함께 숙식과 일을 함께 하는 공동생활에서 오는 갈등, 자주 들리는 총소리와 폭발음 등 준 전시 상태에서 받는 긴장 등으로 우리 단원들은 모두들 지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결정한 어느 토요일의 소풍이었다. TV에서나 보던 아프리카의 풍경과 동물의 왕국을 구경한다는 즐거움에 두 대의 랜드로바에 나누어 탄 우리 단원들은 모처럼 들떠있었다. 인간의 손길이 덜 닿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잘 보존된 비룽가(Birunga)국립공원은 말이 공원이지 끝없는 아프리카 초원이었고 여기에 사슴, 코뿔소, 하마, 사자, 코끼리 등 수 많은 동물들이 자연 그대로 서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또 한 번 잊지 못할 화장실 이야기 꺼리를 겪게 되었다. 생리 현상이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것이긴 한데 이것이 가끔은 수줍은 주인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비룽가를 향해 한 참을 달리는데 뒤에 앉은 한 간호사 단원이 급한 용건이 생겼다. 어렵사리 아프리카인 운전사인 비시무아에게 화장실 있는데서 차를 세워 달랬겠다. 이 친구 얼마를 더 가더니 아무리 둘러봐도 아무 것도 없는 여전한 초원에 차를 세우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선 얼른 일을 보라는 표정을 하는 것이었다. “화장실이 어디 있어?”하고 묻자 이 친구 왈, 영어로 “Everywhere!”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 전 Everywhere Toilet을 없애기 위해 열심히 난민들을 교육했던 우리는 이 아프리카 스타일 Everywhere Toilet의 편리함에 대해 미처 깨우치지 못했음을 솔직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2012/07/21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