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 진정한 '우리'의 회복을
[VISION] 진정한 '우리'의 회복을
  • 관리자
  • 승인 2012.11.03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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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틴 부버(Martin Buber)라는 분은 「나와 너」 라는 책으로 유명한 분이다. 이 신학자가 어느 날 교수실에 찾아온 학생을 상담해주었다. 그 학생의 고민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조언도 해주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그 학생의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 학생과의 대화에서 과연 그는 학생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다한 것이었을까? 그에게는 「나와 너」라는 책을 쓰는 계기를 제공한 아픈 기억이기도 하다.

'나와 너’는 ‘우리’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나와 그것’의 관계는 ‘우리’라고 부를 수 없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진정으로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나와 너’의 관계는 드물다. 수많은 관계 속에 살지만 ‘나와 그것’의 관계로 ‘우리’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대중 속에서 고독하게 살다가 손잡아 줄 ‘너’가 없으면 너무 쉽게 자살을 선택하는지 모른다.

2.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이라는 정신의학자가 어느 날 밤 자정이 넘어 모르는 여인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한 여인은 자살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잠을 방해받아가면서도 그는 그 여인의 이야기를 한 시간 동안 들어주고 자살을 막기 위해 여러모로 조언을 하기도 했다. 이튿날 진찰실에 그 여인이 찾아왔다. 자살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조언이 그녀를 설득한 것이 아니라 자정이 넘은 시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한 시간 씩 들어줄 사람이 있는 세상이라면 아직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서 자살을 포기했노라고.

빅터 프랭클은 “당신은 왜 자살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으로 심리치료를 시작한다. 그래서 자살하지 못하는 가느다란 삶의 실마리를 엮어서 의미를 찾도록 돕는 로고테라피(의미요법)를 주창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실존적 의미를 추구한다. 그 의미가 때로는 아주 하찮아 보이는 것일 수 도 있다. 빅터 프랭클은 유대인인 죄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되는 현장을 목도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의미의 끈을 놓지 않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좀 더 잘 견디고 생존한다는 사실을 그는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정신과의사로서 빅터 프랭클은 인간이 단순히 생물학적인 욕구만을 탐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임을 역설이게도 최악의 조건인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터득했던 것이다. 그의 책 「인간의 의미 탐구」 라는 책의 마지막에 이런 글귀가 있다.
“인간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다. 그러나 그 가스실에 주기도문이나 쉐마 이스라엘을 읊조리며 꿋꿋이 서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3. 우리나라는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다. 경제 개발만이 오로지 살길이라는 논리가 군사독재를 정당화하던 시절이 있었다. “잘 살아보세” 만을 외치며 “바르게 살아보세”는 외면해 버렸던 역사의 열매를 우리가 지금 거두고 있는지 모른다. 인생의 의미를 오로지 경제적 성취에만 두었을 때 그 외의 삶을 꾸려 갈만한 크고 작은 의미들이 철저히 무시되어버린다.
맘몬 신에게 굴복한 나머지 가정도, 인간관계도, 교육의 목표도 모두 왜곡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나와 너’도, 인생의 의미도 왜곡되고 인간관계도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살이 그리도 쉬운 선택이 되어버렸는지 모른다. 맘몬신은 진정으로 섬겨야할 신을 떠나게 하는 힘이 있다. 하나님을 떠나 맘몬 신을 섬길 때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모습과 본질에 대한 왜곡도 따라오게 된다. 그 결과로 지금 나도, 너도 ‘우리’를 잃어버린 세상의 열매들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G샘통합암병원 김민철 원장

2012/11/03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