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크리스마스를 맞이학기 위하여 꼭 필요한것
[VISION]크리스마스를 맞이학기 위하여 꼭 필요한것
  • 관리자
  • 승인 2012.12.2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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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성탄절”

-김민철
-G샘통합암병원원장


크리스마스는 기쁜 날입니다. 화려한 장식들과 크리스마스 캐럴, 아름다운 카드와 선물들이 오가고 예수님과 관계없는 장사들도 호시절을 만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막걸리 집이 많았었는데, 당시의 막걸리 통에도 “기쁘다 구주 오셨네”가 쓰여 있었고, 왜 즐거워(‘메리’)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첫 번 크리스마스의 상황을 이해해야만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2000년 전 베들레헴으로 되돌아가 보려고 합니다. 어려서 주일학교 다닐 때 크리스마스 연극을 생각해보면 요셉과 마리아, 동방박사, 목자들, 예수님 등이 등장인물로 나옵니다.

요셉과 마리아 : 처녀가 잉태하자 마리아와 약혼자 요셉은 수치심과 두려움이 가득하였을 것입니다. 당시 전통 윤리로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혼자 요셉은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마리아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요? 호적을 하러간 이들은 해산 일이 다 찼는데 아이를 낳을 장소가 없었습니다. 급기야는 막 태어난 예수는 짐승들의 먹이통인 구유에 뉘어졌습니다. 냄새나고 더러운 마구간에서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 연극 ‘첫 번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입니다.

동방박사 : 이들은 별을 연구하던 천문학자들이었습니다. 동방이란 말은 그들의 고향이 메데 쯤 일 것으로 추정되는 아주 먼 거리임을 암시합니다. 이들의 여행은 별의 방향을 따라 쉬지도 못하는 초조함 속에 강행 되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예수를 죽이려는 헤롯이 그들에게 예수 있는 곳을 가르쳐 달라고 했고, 그들은 꿈에 지시를 받아 헤롯을 피해 돌아가야 하는 목숨을 건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가 경배하였습니다. 주님의 오심에는 긴장감이 있습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있어야할 종말론적 긴장감이 첫 번 성탄절에도 있었습니다.

목자들: 이들은 밤에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충성스런 청지기의 모습입니다. 이들에게 주의 사자가 나타나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들도 그 밤에 쉽지만은 않았을 산과 들을 넘어 예수께 경배하였습니다. 주님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에게가 아니라, 한 밤중임에도 자기 일에 충실한 동방박사와 목자들에게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그들은 자기 일에 충실했을 뿐 아니라 주님을 만나기 위해 고난을 감수했던 것입니다.

예수님: 막상 예수님 자신은 어떠하였을까요? 낳을 곳이 없어 더러운 마구간에서 말먹이 통에 누워야 했던 비참함, 그리고 생명의 위협 때문에 부모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해야 했던 영아기를 보냈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런 더럽고 비참한 모습으로 탄생하셔야 했을까요? 저는 예수님께서 마구간에 오심을 감사드립니다. 만약 예수님이 수백 억 짜리 교회 건물에 오셨다면, 먼지 하나도 안 보이는 깨끗한 부잣집 안방에 오셨다면 몇 사람만을 위한 예수님이 되셨을 겁니다. 의인은 없으되 하나도 없듯이, 마구간처럼 더러운 마음을 가진 우리도 주님께 나아올 수 있도록 마구간에 오셨나 봅니다.
여기까지 등장한 인물들과 주인공 예수님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나마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단히 엄청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엑스트라에 끼지도 못하는 주인공들이 있습니다.

첫 번 순교자: 그들은 예수님 때문에 죽어야 했던 2살 미만의 어린아이들입니다.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의 2살 미만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 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이들이 우리 주님을 위한 첫 번 순교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 크리스마스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로 얼룩졌었던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비극을 감수하고서라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성육신, 비하(Incarnation): 다시 예수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역사상 최대의 비하사건은 바로 이 성육신입니다. 신격에서 인격으로 떨어지는, 그래서 인간과 같은 육체를 입고 그 육체에 얽매이기를 스스로 취하신 사건입니다. 이보다 더 슬프고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없습니다. 더구나 크리스마스는 십자가상의 죽음을 전제로 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가장 치욕스런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기 위한 탄생!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가슴 아픈 표현의 발로입니다. 사랑과 공의를 함께 속성으로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인간들에 대한 공의로우신 심판에 따라 형벌을 내리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스스로 인간의 육신을 입어,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 박아 피 흘림을 통해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속성을 완성하셨던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정리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결코 주님은 본질이 빠져버린 캐럴이나 크리스마스트리의 화려함 속에 오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진정으로 기뻐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바로”눈물”입니다. 오죽했으면 신격을 인격으로 비하시키면서 스스로 십자가의 죽음을 전제하여 첫 번 크리스마스를 두셨을까? 마구간처럼 더러운 내 마음을 예수님 앞에 내놓고 통회하는 “회개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구간처럼 더러운 나를 구원하시려고 마구간에 오신 예수님의 그 섬세한 사랑과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이 두 가지 눈물이 없이는 기뻐하고 즐거워 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이 눈물로 마구간처럼 더러운 우리의 마음을 씻어내고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는 것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올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2012/12/22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