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
[오피니언]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
  • 관리자
  • 승인 2013.03.23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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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라는 소설이 있다. 잘 아는 대로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소설이다. 물론 게리 쿠퍼와 잉글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영화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감동적인 영화 명대사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면“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두 사람 몫만큼 사랑하겠어요.”라는 대사가 뜨기도 하고, 둘이 처음 키스를 할 때 높은 코를 가진 마리아가“코를 어느 쪽에 두죠?”라는 대사를 명대사라고 소개해 놓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이 소설의 제목인“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라는 말은 헤밍웨이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존 던(John Donne, 1572-1631)이라는 형이상학파 시인이 죽음을 바라보며 쓴 설교문 같은 글을 출판하였는데 거기 명상 17번에 나오는 문장을 헤밍웨이가 소설의 제목으로 사용한 것이다.

어느 누구고 하나의 섬은 아니요
어느 누구고 그 스스로 온전한 것은 아닐러라.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한 부분.
파도가 밀려와
한 줌의 모래 덩어리를 씻어 가면,
씻겨간 만큼 유럽의 땅이 줄어드나니
그것이 갑(岬)이라도 마찬가지이고
그것이 그대 친구나
그대 자신의 농지라도 마찬가지이듯,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 자신의 소모려니
왜냐하면 나 또한 인류의 일부이기에.
그러므로 사람을 보내어 묻지 말지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냐고.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므로.

기독교가 삶의 일상의 모든 분야를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는 누군가가 죽으면 교회에서 이를 알리는 조종을 울렸었다고 한다.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거나 다른 일상에 매인 사람들은 저 조종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 알아보라고 사람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존 던은 말하기를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그 조종은 바로 나를 위해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 또한 인류의 일부이기에. 마치 파도가 밀려와서 유럽 바닷가의 모래가 한 줌 씻겨 가면 그만큼 유럽의 땅이 줄어드는 것처럼 인류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에게 상실이 된다는 것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누님 덕에 학생 때 이 글을 접한 이래 이 글을 외우고 다니며 지금까지도 종종 인간 실존을 대면해 보기도 하고, 가슴을 흔드는 깊은 감동을 느끼곤 한다.

필자는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이 존엄하게 마지막 삶을 살도록 돕는 호스피스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이 명상을 자주 소개하곤 한다. 동시에 이 글은 나 자신에게 울리는 조종을 들을 줄 아는 지혜를 주는 글이기도 하다. 모세가 쓴 시편인“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라는 말씀이 날마다 나 자신이 궁극적인 것을 향하도록 일깨워 준다면, 존 던의 이 글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전 인류가 서로 그물처럼 얽혀있는 관계임을 깨우쳐준다. 개인은 물론 가족, 이웃을 넘어 전 인류를 하나의 공동체로 본 그의 사상은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 Cosmopolitanism)적인 색채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

오늘을 살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지구 저편의 인류에 대해서 까지는 마음이 미치지 못할지라도, 아니 그 보다 먼저, 나와 지금 눈에 보이는 관계 속에 살고 있는 가족과 이웃이, 내 직장 동료가 상처 받은 하나님의 형상임을 기억하고 그 안에 아직 남아있는 하나님의 형상들을 서로 격려하고 강화해가는 만남들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2013/03/23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