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 교수의 생명 칼럼(6)
박재현 교수의 생명 칼럼(6)
  • 박재현
  • 승인 2006.06.2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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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죽으면 썩어질 몸"


“어차피 죽으면 썩어질 몸 아껴서 뭐하냐?”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대개 이런 말은 나이 드신 분들이 잘 하시곤 합니다. 나이가 많이 드셨는데도 불구하고 거칠고 힘든 일을 계속하시는 부모에게 자식들이 마음이 좋지 않아서 또 건강이 염려되어 일을 그만두시라고 할 때 흔히 듣게 되는 말입니다.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면 멀쩡한 곳까지 더 아프다”, “몸 많이 써서 죽은 사람은 없다. 왜 멀쩡한 몸을 놀리느냐?”는 고집스런 대답이 나옵니다.

몇 년 전부터 “어차피 죽으면 썩어질 몸 아껴서 뭐하냐?”는 말이 다른 상황에서 많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장기 기증과 관련해서 많이 쓰이게 되었습니다.

장기 이식 수술은 다른 의학적인 방법으로는 치료하기 힘든 환자를 치료하는 어찌 보면 최후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식 수술에 필요한 장기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으로 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장기 이식 순서를 기다리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으며 기다리다 못해 장기이식 수술을 받으려고 중국으로 가기도 합니다.

중국에서는 사형수의 장기를 적출하여 일본과 한국 등에서 온 환자들에게 이식 수술을 하고 있어 끊임없이 윤리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기독교를 필두로 한 종교계 단체들이 생명나눔운동의 일환으로 장기 기증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일은 반가운 일입니다. 장기 기증의 활성화는 시급한 과제입니다.

기독교에서도 장기 기증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운전면허증에 장기기증 희망의사를 의무적으로 명시토록 해 기증이 활성화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되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방송된 장기 기증 홍보 공익광고가 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켰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장기 기증이 다섯 사람에게 새로운 행복한 삶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장기 기증은 생명 나눔입니다’라는 공익광고의 주인공인 고 김상진 씨의 사연이 언론을 통해 소개된 뒤 장기 기증 희망자 수가 10배 이상 늘어났고 실제로 기증하는 분들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식수술을 받으면 병을 고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장기 이식을 기다리다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장기 기증을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은 분명히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있는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기 쉽지 않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앞으로만 나가게 되면 원하지 않는 부작용들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인간의 육체를 단순하게 다른 사람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장기들의 집합으로 간주하게 되면 인격과 육체의 밀접한 관계를 상실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기 기증이 도덕적으로 칭송받을 만한 고귀한 행동임에는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육체를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부품들의 집합’으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됩니다.

부질없는 걱정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장기 기증이 활성화된다 해도 이식에 필요한 장기를 100퍼센트 확보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무엇보다 아끼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살아 있을 때는 물론 뇌사상태나 죽음 뒤에도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 놓기가 쉽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아무리 고귀한 일이라 해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강요에 의해서, 압력을 받으며 하게 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차피 죽으면 썩어질 몸”이지만 양지바른 곳에 고이 묻히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장기 기증은 어디까지나 ‘칭찬받을 만한 자선 행위’지 ‘누구든지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005.6.24. 경기복지뉴스 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