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디지털중독(1)
[건강]디지털중독(1)
  • 관리자
  • 승인 2013.11.0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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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익
서울우리아이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원장


원래 주현이는 게임 매니아였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컴퓨터 게임을 너무 좋아해 부모는 걱정이 많았다. 어릴 때는 완력으로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했지만 청소년기 들어서는 거칠게 저항하는 아이를 통제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주말이면 늘 밤샘이었고 주중에도 12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틈만 나면 PC방을 들락거렸고 늦은 시각에 부모가 찾아 억지로 데려오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런 아이가 고3 들어서는 철이 들었는지 전과는 달리 그 좋아하던 컴퓨터도 덜 집착하는 듯 했고, 공부도 좀 신경 쓰는 듯 보였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문제였다. 학교와 학원에서는 사용하지 못하지만, 일과를 마치고 나서는‘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는 명분하에 한두 시간씩 붙잡고 있었다. 부모는 예민한 고3 아이를 자극하는 것이 걱정이 되어 한두 번 좋게 얘기를 건넬 뿐이었다. 스마트폰을 하느라 새벽 2시가 넘어서도 잠을 자지 않았고, 아침마다 깨워 학교 보내려면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학교에서도 수면 부족으로 졸기 일쑤였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 수험생은 자기 스스로도“스마트폰 없이는 못산다.”고 고백했다. 스마트폰 중독자인 셈이다.

IT 일류 국가 한국에서 그리 힘들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런 기계들은 24시간 내내 언제나 바로 옆에 붙어 있으면서 어떤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 누가 누구를 통제하고 있는지 모호해지는 디지털 기계와의 역전된 관계로 인해 적잖은 이들이 상담실을 방문한다.
‘중독’의 전통적인 의미는‘자신에게 해가 되고 있음을 알면서도 어떤 약물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약물중독에는 원래 목적보다 더 자주 더 많이 사용하는 행위인‘남용’이 흔히 동반되며, 같은 효과를 보기 위해 점점 양을 늘려야 하는‘내성’과 갑자기 사용을 중단하면 경험할 수 있는‘금단’이 동반되기도 한다. 내성 혹은 금단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를‘의존’ 상태라고 정의한다. 이처럼 처음에는 약물중독에만 사용했던 중독의 개념은 점차 확대되어‘자신에게 불이익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떤 특정 행위를 반복하는 경우’에도 적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도박중독, 쇼핑중독, 일중독 등이다. 그 중 최근에 특히 주목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인터넷중독, 게임중독, 컴퓨터중독이며, 이런 현상을 가리켜‘행위중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디지털중독이란 TV, 컴퓨터, CDP, PDA, 휴대폰, 게임기,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장비를 불필요한 수준으로 과도하게 사용한 나머지 심리사회적·학업적·직업적 기능 저하를 동반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아직까지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축적되어 있지 못해 공식적인 의학적 진단명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과 가족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의 연구를 살펴보면 흥미롭게도 약물중독 현상과 유사한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요약하면, 중독의 핵심 요소인 쾌락(pleasure)을 조절하는 뇌기능의 저하, 특히 쾌락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인‘도파민’시스템 이상이 반복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런 결과는 대표적인 마약인 코카인 중독에서 특징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디지털중독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약물중독처럼 심각한 문제가 동반되기 때문일 것이다. 과도한 디지털 장비 사용으로 인해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사회적 교류가 감소할 수 있으며, 학업 및 업무 수행이 저하된다. 보호자의 갈등이 심화되고, 금지시키면 금단 증상이 일어나 심하게 불안해하거나 분노 폭발을 보일 수도 있다. 우울증이나 수면문제 역시 흔히 동반된다. 이런 심리사회적 문제뿐 아니라, 신체적인 문제도 자주 동반될 수 있다. 활동량의 감소에 따른 비만과 이에 따른 성인병의 위험성 증가, 과도하게 특정 신체부분을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근골격계의 합병증, 시력의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디지털중독 현상은 다른 문제에 의해 2차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가장 흔한 경우로는 주의력 결핍(ADHD), 우울증, 왕따와 같은 사회적인 고립, 과도한 스트레스 등이다. 주의력이 부족한 경우에는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 우울증은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을 때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그리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작한 디지털 기기 남용이 점차 디지털중독 현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원인이 되는 문제를 잘 살펴서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 호부터 디지털중독을 선별하고 진단하는 방법과 치료 및 관리법에 대한 이야기를 실을 예정입니다.)


2013/11/7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