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영화-신이 보낸 사람
[문화산책]영화-신이 보낸 사람
  • 관리자
  • 승인 2014.03.0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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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 Vadis, Domine?(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양희철
추계예술대학교 전자정보도서관 사서


늙은 사도는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동행이었던 나자리우스에게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으나 베드로의 귀에는 맑은 목소리로 말하는 대답이 들렸다.
<그대가 나의 어린 양들을 저버렸으니, 내가 또다시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로마로 가리라.> 그리하여 사도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게 된다. 네로 시대 때 초기 그리스도교의 순교를 그린 작품, 센케비치의 1896년 작 「쿼바디스」에 나오는 장면이다.

왜 그 장면을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얼음은 벌써 다 녹아 미지근해진 콜라는 들고 있는 나의 손을 한없이 부끄럽게 하고 있었다.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있었지만 다리가 풀려 자릴 박차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보고 일주일이 지나간다. 도저히 감상평을 가볍게 써내려 갈 수가 없었다. 영화가 내게 사악 스며들어 잊혀질 것은 잊혀지게 내버려두고 알맹이만 남아 떠오르기를 기다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자, 이제 원고 마감이 다가오니까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다.“잘 들어봐. 잘 설명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이 영화는 말야…….” 하고 아내에게 말하듯 <신이 보낸 사람>을 소개하려고 한다.

<신이 보낸 사람>은 (다녀온 한 선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14만명이 넘는다는) 북한의 지하 기독교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주철호 부부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1급 정치사상범으로 고발당해 수용소로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받게 된다. 공산당의 소위‘예수쟁이’들을 색출하는 작업으로, 체포된 기독교인들은 갖은 고문 끝에 또 다른 형제들을 주동자로 밀고하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주철호의 아내 영미는 아무도 고발하지 않고 신을 향한 찬송을 부르며 고문을 견디다 순교하게 된다. 그로부터 2년 후 주철호는 아내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탈북하기로 결심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시 고발당하게 된다. 주철호와 이제 그를 믿을 수 없게 된 지하교인들은 국경 경비대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신앙의 자유가 있는 땅 남조선으로 목숨을 걸고 탈북을 감행해야 한다.

영화의 배경은 한 겨울의 두만강 국경지대다. 그곳은 우리나라 석탄산업이 붐을 이루던 1960~70년대의 탄광촌보다 못하고, 얼어붙은 두만강 주변 둑에는 탈북을 시도하다가 총살 당한 시체들이 나뒹군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그들이 필요로 한 것은 그저‘먹을 것’과‘신앙의 자유’, 그리고‘가족’ 뿐 이었다.
대조적으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자유’는 무엇일까. <신이 보낸 사람>은 내게 주어진‘자유’라는 보이지 않는 실존 덩어리를 한 순간이나마 가슴 아프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우리에겐 너무도 당연하여 여름날 소낙비처럼 길거리에 나가면 흠뻑 적셔지는,‘자유’와‘믿음’이라는 값싼 실체를 여기서 이렇게 무겁게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북한 주민들의 인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북한 지하교인들의 간절한 기도 소리가 곁에서 들릴 만큼 그들은 나의 형제로서 성큼 다가와 있었다.“남조선은 가나안 땅입니까?”이것은 <신이 보낸 사람>의 중간과 끝에 두 번 내레이션 되는 질문이자, 이 영화가‘탈북을 꿈꾸는 형제들의 가나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다. 우리의 가나안이 어떠한 노력이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축복’으로 부여 받은 것이라면, 감사할 줄 모르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그들에게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엔딩 크레딧과 함께 북한 현지에서 촬영된 지하교인들의 영상과 음성파일이 공개된다. 영화OST를 배경으로 어느 할머니의 우는 듯 간절한 기도소리와 수용소에서 고문 당하는 교인들의 영상이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것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공개 처형되는 장면을 담은 마지막 영상에서 총성이 세발 울리기 전에‘주여!’하고 울부짖는 사람의 소리를 들었을 때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북한, 거기에는 우리의 형제들과‘신앙’이라는 자유를 위해 또 다른 자유를 철저히 구속당하는, 베드로와 같은 작은‘사도’들이 살고 있다. 모른다면 모르겠지만 <신이 보낸 사람>을 통해 그들을 알게 된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에게 갈 길을 암시하듯 아내 영미가 철호의 어깨에 기대어 말하고 있다.“너무 애쓰지 마세요. 애쓴다고 되는 일은 없어요.”“꿈을 꾸었는데 저는 방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고 밖에서는 동포들이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상한 건 내가 기도를 멈추면 동포들이 한 사람씩 죽어가는 거예요.”
“하지만 기도를 쉬지 않으면 아무도 죽지 않았어요.”



2014/03/08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