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느리게 읽기
[문화산책]느리게 읽기
  • 관리자
  • 승인 2014.04.1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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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를 늦추는 독서의 기술
<느리게 읽기>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차는 신호등 앞에 잠시 멈춰 서 있었고 나는 가끔 좋아라 즐겨 듣는 팟캐스트 방송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날은 봄으로 가는 문을 순식간에 넘어서고 있었다. 대시보드 넘어 유리창 사이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어쩌다가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켜놓은 팟캐스트 방송은 유쾌한 전문 MC 두 명이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과 그 작품세계를 진중하게 파헤치는 ‘책’ 전문 프로그램으로 곧 책을 소개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고 있었다. 전혀 광고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목소리로 소개하고 있는 책의 이름은 <느리게 읽기>. “이 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독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독자에게 매우 적대적인 환경이라고 진단합니다…편집자인 저 조차 잠자기 전 누운 채로 책을 읽던 습관은 사라진지 오래고요…블라블라블라.”별 감흥 없이 듣고 있었는데 저자가 <느리게 읽기>의 방법으로 성서와 호메로스의 서사시부터 셰익스피어, 사뮈엘 베케트, 앨리스 먼로, 필립 로스까지 방대한 시공간을 아우르는 고전들을 다루고 있다는 얘기에 은연중에 귀가 솔깃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클로징 멘트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인용하는 대목에서 나는 이미 이 책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이 글의 에필로그에서도 그 부분을 그대로 소개하려고 한다. 방송내용을 표절하는 것 같지만, 뭐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일부 그대로니까. 아무튼 그 방송을 듣고는 과연‘이 시대에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골똘히 생각하면서 남아 있는 늦은 출근길에 차를 몰았다.

<느리게 읽기> 편집자가 책을 소개하면서 말한 ‘독서가 취미라고 말하기 머쓱한 시대’를 두고 나는 어떻게 느끼고 있었을까. 그는 하루일상을 ‘아침에 눈을 떠서 출근길부터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를 체크하고, 뉴스와 가십거리를 찾아보는 일이 종일 반복 된다.’고 했지만 나는 한술 더 떠서 스마트폰을 들고 화장실에 앉아서 아침을 맞이하는 지경에 까지 와있었다. 그렇다면 요즘의 책읽기는 또 어떠한가. 독서조차 책을 통해 자기계발을 하고 인문학으로 마케팅을 하는 시대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그런 다분히 목적 지향적인 책읽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뭐랄까 왠지 항상 다급하고 강박적이면서도 조금 전투적이랄까. 약간 벗어난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최근 출간된 강준만의 <감정독재>에서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심리학적, 사회경제학적 이론을 적용하여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었다. 현재는 인터넷과 SNS로 대변되는 커뮤니케이션의 혁명으로 인해 이성보다는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고 단언하고 있다. 한마디로 여러 정보를 분석해야 하는 이성보다는 소위‘스피드(속도)’가 좌우하는‘감정독재’의 시대라는 얘기다.

<느리게 읽기>와 <감정독재>를 연달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루 종일 감정을 무슨 화수분인 것 마냥 습관적으로 가져다 소비하는 시대에 과연 책을 순수하게 읽을 감성이 남아있기나 할까? 책을 읽고 싶어도 피로가 쌓인 감정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테니 힘이 남아도는 이성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게 아닐까?
결과적으로는 <느리게 읽기>와 <감정독재>, 두 권의 책을 소개하는 셈이 되면서 처음의 질문은 약간 비틀어져‘이 시대의 책읽기는 무엇이어야 할까’라는 관점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빠르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느리게 읽기>는 또 다른 삶의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많이 빨리 읽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충실하게 읽는 것, 삶의 리듬과 속도를 늦추고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까지도 변화시킬 독서로,‘순수한 의미로의 느린 책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무의식적으로 나 스스로도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떠한 특별한 목적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등하굣길 지하철에서 시집을 들고 읽어도 어색하지 않았던, 책 읽기가 주는 즐거움을 고스란히 몸으로 느끼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 자체로 좋고 즐거워서 하는 일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독서도 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나는 가끔 이런 꿈을 꾸었다. 최후의 심판일이 되어 위대한 정복자들과 법률가들, 정치가들이 보상을 받으려고 갈 때, 옆구리에 책을 끼고 가는 우리를 본 신이 베드로를 돌아보면 부러운듯한 표정으로,‘보아라, 이들에게는 상이 필요 없겠다. 그들에게는 줄 것이 없어. 그들은 독서를 좋아했으니’라고 말하는 꿈을 말이다.”

-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중에서



2014/04/12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