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거짓말하는 아이, 그리고 세상 양육
[건강]거짓말하는 아이, 그리고 세상 양육
  • 관리자
  • 승인 2014.05.1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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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익
서울우리아이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한 아이가 왔다. 독실한 신앙인인 부모는 아이의 거짓말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다른 건 용서가 돼도 거짓말만큼은 안됐다. 한두 번 타이르다가 결국 여러 번 매도 때렸다. 그런데도 거짓말은 계속 반복되고, 이제는 자식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조차 사라져 버렸다. 어떤 얘기를 해도 믿을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물었다.“넌 왜 거짓말을 하니?”대답은 간단했다.“거짓말이 입에 뱄어요.”처음에는 원하는 것을 순간 얻기 위해, 또 맞을 게 두려워서 한두 번 거짓말을 했었다. 그런데 먹히더라. 그래서 하다보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툭 튀어 나온다는 것이다. 아이도 거짓말을 하면 더 맞게 되고, 결국 원하는 것도 더 가지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순간의 당혹스러움이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보다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애나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필자도 겸손히 돌이켜보면 어른이 된 지금도 순간의 모면을 위해 얕은 수를 떠올리는 나를 종종 발견한다. 위기(?)의 순간 달콤한 유혹을 물리치고 옳다고 믿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내린 결정대로 실천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그리보니 거짓말을 안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그래서 늘 진실을 말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다시 말하면, 당신의 아이가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 하지만 물론, 그래서 더욱 가치있는 일이다.
자녀가 거짓말을 안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의 경험을 통해 생각해보자.

첫째, 거짓말을 했더니 원하는 것을 얻게 되는 초기의 경험이 거짓말을 자라게 한다. 그렇다고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인간의 탐욕은 블랙홀과 같아서 아무리 먹고 얻어도 만족할 줄 모르고 오히려 몬스터처럼 커져만 가기 때문이다. 오히려 초기에 거짓말을 통해 이익이 되었던 경험 대신 손해가 되는 경험이 필요하다. 즉 거짓말로 얻게 된 작은 이익들을 모두 되돌리게 해야 한다. 이 초기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놀랍게도 많은 부모들이 초기 한두 번 사소한 거짓말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 그냥 봐준다. 거짓말을 한 아이에 대해 인격적 모독을 한다든지 고통을 주라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한없이 용서하되, 그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게 하라는 것이다. 아이가 그 행동한 것을 가슴 깊이 후회하도록 해야 한다. 당시에는 부끄럽고 힘든 일이지만, 값을 지불하는 경험은 아이의 양심을 더욱 순결하게 해준다.

둘째, 용서이다. 실제적인 말로 풀이하면, 솔직히 말하고 책임을 지는 행동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인정이다. 책임을 다한 거짓말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말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도록 정서적으로 지원하고 독려해야 한다. 아이가 충실히 값을 치뤘으면, 아이에게 인정과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자기 잘못을 드러내고 책임진다는 것은 어른도 하기 어려운 힘든 과정이다. 거짓말을 흔한 일이나 솔직히 인정하고 정직한 책임을 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건 훌륭한 일이다. 그러니 꼭 합당한 인정이 있어야 한다. 이 초기의 경험과 지원이 가장 중요한데, 습관이 되면 고치기가 매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아이의 마음 속에‘잘못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고귀한 철학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평생 반복될 실수와 실패, 그리고 그것을 모면하려는 수많은 유혹에서 스스로 올바른 편에 서서 이겨낼 수 있다. 자신의 삶에 쓰러지지 않는 불굴의 동기를 부여하는 힘은 이런‘용서’에서 비롯된다. 성서와 레미제라블의 교훈을 기억해라.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읽어라. 남에게 받은 용서를 통해 나 자신을 용서하고 또 다른 사람을 용서하게 된다. 가장 영향력이 큰 남은 바로 부모다.

셋째, 혼내는 양육 방식에 대한 고민이다. 체벌을 하거나 말로 혼을 내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일까? 과학적 연구 결과를 보면, 효과적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고 되어 있다. 명확한 것은 부작용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아이의 사례처럼, 벌 받을 것이 두려워 또 다른 거짓말을 하도록 조장할 수 있다. 부모의 강압적인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다른 아이들,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 혹은 미래의 자신의 자녀에게 사용할 수도 있다. 또한 감정을 배제한 체벌은 책속의 이야기처럼 쉽지 않다. 부모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자녀니까 더 속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예 이런 부작용 많고 적용하기 어려운 방식을 택하지 않으면 안될까? 화를 내는 대신 그냥 책임을 지고 손해를 보게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쿨하게!

넷째, 시간적으로는 가장 먼저해야 하는 일이다. 반드시 거짓말 하는 이유와 상황을 들어야 한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물론 이 이유를 해결해줄 수도 없고 해결해줘서도 안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래도 아이의 생각을 꼭 들어라. 아주 세심하게 경청해라. 잘잘못을 비판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아이의 사정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는 바로 혼내거나 교정하려 하지 말라. 제발 부탁인데 설명하고 설득하지 말아라. 이런 사람에게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꺼낼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변명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저 들어라. 5분이면 족하다. 듣는 시간이지 부모의 생각을 전달하는 시간이 아니다. 듣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부모는 아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존재가 아니다. 아니 해결해줄 수 없다. 부모도 연약하고, 또 솔직히 말해 아는 것도 별로 없다. 하지만 잘 들어줄 수는 있다. 맨 마지막에 한 마디만 해라.“솔직히 얘기해줘서 엄마, 아빠는 기쁘다.”

마지막, 진실의 힘에 대한 확신이다. 이것은 가장 어려운 과제이다. 부모의 믿음이기 때문이며, 동시에 부모의 생활이기 때문이다. 거짓은 결국 인간의 삶을 불안하게 하고 망가뜨리지만, 진실은 사람을 두 다리 쭉 펴고 잠들 수 있게 만든다는 변하지 않는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아이의 성장과정에 그대로 녹아들어갈 것이다. 아이들은 스폰지처럼 진실 혹은 거짓을 선택하는 부모의 가치관과 삶을 빨아들일 것이다. 어떤 부모는 의아해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거짓말을 많이해서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는 말이냐고? 물론 그런 말이 아니다. 부모가 진실해도 아이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앞에 언급된 이유 때문일 수도 있고, 아이의 기질적인 취약성(충동적 경향, 지연 불내성 등)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크게 보면, 우리 어른이 만든 사회(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른이 만든 것이지 아이들이 만든 것은 분명 아니다)가 갖고 있는 위선과 거짓의 무게, 삶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 기다림과 기회의 부족이 아이들이 진실을 선택하기 어렵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순간의 안일을 위한 거짓의 유혹을 물리치고, 지금은 어렵지만 결국 평화를 가져다줄 진실을 선택하는 미래의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다. 그렇다면 나 자신부터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어린 시절 거짓말은 나이들면 사라진다. 아니 겉옷을 바꾼다.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속옷까지 갈아입히려면 만만치 않다.
아이들과 함께 깨끗이 목욕하고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고 싶다.


2014/05/17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