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평론가 임지연의‘마을에서 함께하는 우리아이 독서모임’[7]
아동문학평론가 임지연의‘마을에서 함께하는 우리아이 독서모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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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5.1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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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성장하면 독서모임도 진화한다

임지연

아동문학평론가
교육문화공동체 상수리나무 대표
(주)좋은터 교육기획

돈만 주면 뭐든 맡길 수 있는 시대다. 가족들과 이웃들이 담당했던 일상적인 돌봄과 교육도 상품화되어 거래된다. 이웃들과 오랜 시간 관계를 맺고, 지혜를 모으고, 시간과 공을 들여 진행하는 독서모임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참으로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활동이다. 뭐든 소비를 통해 해결하는데 익숙한 우리네 삶에서 이렇게 공이 많이 드는 모임을 만들고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들 책읽기 프로그램을 원하면 얼마든지 돈으로 살 수 있다. 당장 눈으로 보이는 이득은 없는데 아이들끼리의 갈등과 이웃 엄마와의 불편한 감정은 손톱 바로 밑까지 와 닿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을 마을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어울려 만드는 독서모임이 널리널리 퍼지길 희망한다. 독서모임을 하다보면 아이의 성장과 함께 그 내용도 꾸준히 진화한다. 유아기 때는 먹고, 놀고, 관계를 형성하는 게 핵심이라면, 초등 저학년 때는 아이의 생활주변을 탐색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 훈련이 주가 된다. 남과 다른 생각, 다른 느낌에 주목해서 자신의 생각을 키워 나갈 수 있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조리 있게 정리하고 표현하는 것, 나를 넘어 우리와 사회로 생각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청소년기가 되면 또래끼리의 문제와 관심사를 본인들의 힘으로 탐구하는 공부가 가능하다. 모임을 하다가 아이가 크면 크는 대로 이사를 가면 가는 대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모임의 내용과 방법을 정해가면 된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내 아이와 나에게 이 모임이 의미가 있는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이런 손익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당장의 이익을 가늠하며 지금의 생활을 선택하는 삶의 방식에 익숙하다. 당장 피곤하고, 이익이 느껴지지 않더라도 아이와 나의 삶을 길게 보고 느린 걸음으로 모임을 지속하다보면 어느 결에 채득되는 삶의 깊이가 있다. 돈으로 사는 아이들 교육과 엄마들의 일상적인 수다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가치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돈으로 사는 아이들 교육엔 지식은 채울 수 있어도 인간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사려 깊은 마음과 지혜는 채울 수 없다. 엄마들의 일상적인 수다엔 잠시의 위안과 즐거움은 채울 수 있어도 삶의 깊은 통찰과 계획을 함께 나누긴 힘들다. 책을 매개로 저마다 다른 생각과 지혜를 모으며 일상의 시간들을 함께하다보면 우리네 삶속에 이웃이 들어와 있고 삶의 철학을 나누게 된다. 사람과 사회와 삶의 가치와 방법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시간이 된다. 일상을 살아가는데 나의 생각을 확장하고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을 꾸준히 가질 수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것은 삶의 큰 축복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이런 삶의 방식과 관계맺음과 지혜들을 어떻게 혼자서, 또는 돈으로 해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이웃집 친구들과 모여야 한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세계를 배우기 위해 책을 만난다. 그리고 함께 이야기 나눈다.

함께 나누는 이야기는 모임의 핵심이다. 이야기는 당장 오늘 나의 기분이 될 수도 있고, 책 속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이제 우리네들은 일상생활 속 지혜와 상대방을 대하는 예의와 대화방식을 따로 연습하고 훈련해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핵가족 시대, 우리 집 대문을 닫으면 이웃에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관계 단절의 시대, 저마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가족들이 여유 있게 모여 앉아 하루 밥 한 끼 나누기도 힘든 이 시대에 우리가 잃어가는 것을 생각해본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필 줄 아는 눈치,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어른들의 조언, 놀이 속에 터득하는 사람관계의 지혜, 목적 없이 즐기는 시간들, 나의 성장을 꾸준히 함께 지켜봐주는 사람들……. 이렇게 한 사람의 인간이 풍요롭게 자라기 위해 필요한 많은 것들은 계획된 교육상품을 소비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나의 삶속에서 나와 이웃하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같이 성장하면서 생기는 것이다.

한 아이가 잘 자라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부모 혼자 온 마을이 될 수는 없다. 부모가 할 일은 우리 아이들이 온 마을과 관계를 맺게 도와주고, 부모 또한 다른 아이들의 온 마을이 되어 주면 된다. 부모가 온 마을이 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할 것이다. 그중에서 나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책 읽는 습관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보길 권장한다.


2014/05/17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