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을 위한 정책 - 성별 영향을 고려해야’
‘도민을 위한 정책 - 성별 영향을 고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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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7.22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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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김양희(한국여성개발원 평등정책연구실장)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책에 대해 무관심하다. 정책으로부터의 혜택 또는 불이익에 대해 특별히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마도 삶이 편안하고 큰 어려움이 없는 이들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정책은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형평있게, 또 효율적으로 기획되고 집행되는지에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정책이 특정 집단에게 차별적인 영향을 가져올 여지가 있다면 반드시 시정되어야만 한다.

환경영향평가가 개발 사업이 환경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면, 성별영향평가는 정책과 프로그램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차별적 영향을 파악하여 개선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국민/도민을 위한 정책이 의도적으로 특정성을 차별하려고 할 리가 없다. 하지만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다른 삶의 조건하에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정책에 대한 요구가 다를 수 있고, 정책으로부터 받는 영향 또한 다를 수 있다.

정책이 전통적인 성 역할관을 전제로 함으로써 여성의 무보수 노동을 가중시키거나 사회의 성역할 분리를 강화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조례에 노인발전기금을 특정 노인단체를 통하여 지원하도록 규정할 경우, 할머니들께서는 노인인구의 과반수이상을 구성하면서도 단체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기금의 혜택에서 소외되기 쉽다.

처음부터 할머니들을 차별할 의도는 없었지만 할머니들의 생활이 할아버지들과 다르기 때문에 결국 차별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농업인을 육성하는 정책에 대한 분석 결과, 여성농업인 육성정책은 여성농민 단체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남성농업인 육성정책은 일반(남성중심) 농민단체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성별 분리 현상이 나타났다.

정책 사업의 수와 예산규모는 물론 전자보다 후자의 경우에 훨씬 더 컸다. 게다가 여성농민단체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업은 여성 농업인 대회, 여성농업인 지도자 세미나 등과 같은 일회성 행사인데 반하여, 남성조직을 통한 사업은 품목별 작목반 운영, 고급 농업경영교육 등과 같이 질적으로 다른 내용이었다.

우리나라 전체 농업생산에 투입되는 노동력의 절반 이상을 여성 농업인이 담당하고 있지만 여성의 교육 요구를 반영하는 영농 교육은 부족하다. 교육을 제공할 경우에도 여주에서 아이들과 노인을 돌보면서 농사를 하는 여성농업인이 수원의 교육장에 와서 교육을 받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교육에 대한 정보를 관공서에 계시하거나 인터넷을 통하여 전할 경우에 관공서 출입과 인터넷 사용이 저조한 여성들이 그 정보를 접할 가능성은 낮다. 이같이 정책서비스의 내용과 추진 방식, 전달체계와 홍보 방식 모두에서 성별 현실을 고려한다면 정책의 효과와 수혜자의 만족도가 배가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성별영향평가는 여성발전기본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즉, 2002년 말 동법을 개정하여 제10조(정책의 분석, 평가 등)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소관 정책을 수립, 시행하는 과정에서 당해 정책이 여성의 권익과 사회참여 등에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평가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그 후 여성가족부에서 지침을 마련하여 2004년부터 시행해 왔다. 2004년도에는 법무부 등 9개 기관이 10개 과제에 대한 성별영향평가 시범사업을 실시하였으며, 2005년도에는 광역자치단체와 중앙행정기관 총 55개 기관이 참여하여 총 85개의 과제를 수행하였다. 2006년도에는 65개의 기관에서 모두 95개의 과제를 수행하고 있거나 준비 중에 있다.

이 같은 작업은 공공정책의 성 형평성을 제고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2005년 평가담당자 및 평가 수행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65%가 성별영향평가제도가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는데 긍정적이라고 응답하였다.

그럼에도 아직 이 제도의 취지나 방법이 널리 알려지지 않아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경기도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알아 본 바에 의하면 평소 정책업무에서 성별 영향을 고려한 적이 있는 이들은 9.7%에 불과하며, 주 내용은 위원회에 여성위원을 위촉과 관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46.5%가 ‘필요가 없어서’라고 하였고, 33.1%가 ‘잘 몰라서’라고 하였다. 그 외 성별로 분리된 통계가 없어서, 절차가 까다로워서,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여서 등의 응답도 나타났다. 따라서 성별영향평가에 대한 교육과 홍보, 성별 분리 통계의 확충이 시급하다.

정책은 예산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예산은 정책의 구체적 표현인 동시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의사결정 결과이기 때문이다. 예산으로 표현된 정부의 활동은 정부가 진정으로 어떤 정책을 수행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여성정책은 정치적인 변화에 민감하며 종종 수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산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이같은 이유로 성 평등 실현을 위한 예산 분석과 할당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예산에 대하여 개입하려는 주장의 주된 내용은 “여성예산”의 규모가 작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여성단체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여성정책예산을 분석하고 확충해야 할 예산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것이 최근 기획예산처의 예산작성지침에 성별영향평가와 예산을 연결 짓는 내용이 포함되고, 예산서와 결산보고서에 성 인지 예산을 포함하도록 하는 국가재정법(안)이 국회 운영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는 등 성 인지 예산의 제도화가 추진되면서 정부 재정 전반에 대한 성 인지적 운용이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기존의 성별영향평가의 대부분은 경제적 분석과 분리된 채, 사회적 측면에 대한 분석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이는 매우 치명적인 한계인데, 특히 성별 노동의 분업의 핵심으로 표출되는 생산과 재생산 노동, 임금 노동과 무보수 노동의 관계 등이 근본적으로 경제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각각의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이 두 가지 제도를 연동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책의 성별영향평가나 성 인지 예산은 공무원들이 일상 업무에서 실천해야 하는 새로운 제도들이다.

이러한 제도들이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일반 시민의 관심과 모니터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


(2006.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