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감정노동자들의 편에 서다(2)
[기획]감정노동자들의 편에 서다(2)
  • 관리자
  • 승인 2014.10.2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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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같은 고객이 되려면 왕처럼 행동하라

감정노동자들의 인격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난 호에서 언급한 감정노동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이어 감정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 보았다. 또한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행복을 위해 뛰고 있는 감정노동연구소 김태흥 소장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대처방법을 몰라 무조건‘잘못했다’ 고 사과 하는 수밖에 없어

2년 동안 패스트푸드 전문점, 편의점, 빵집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온 이 모(21)양과의 일문일답.
Q. 일을 하면서 만난 불량고객의 유형은 어떠했나요?
A. 제품이 나왔는데도 막무가내로 다른 제품으로 바꿔달라는 고객을 비롯해 무작정 재촉하고 짜증내는 고객. 특히 행사제품이 나오면 오래된 재료나 비위생적으로 만들 거라고 생각하며 의심하는 고객.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막말에다 카드나 돈을 던져 주는 고객 등입니다.

Q. 불량고객으로 인해 당한 불이익은 있나요?
A. 정신적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무기력해지고 우울한 상태로 계속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불량 고객들을 또 만나게 되면 그 스트레스는 배가 되어서 정신적으로 더 힘들고 사람들 대하는 게 짜증나고 만나기 싫어집니다.

Q. 고객과 문제가 생겼을 경우 어떻게 대처했나요?
A. 무조건 고개 숙여 죄송하다고 말한 뒤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최대한 고객의 기분에 맞춰주려고 노력합니다.

Q. 불량고객을 만났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셨거나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나요?
A. 마음속으로는 정말 싸우고 싶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으며 억지로 웃었습니다. 그리고 불량고객을 대처하는 교육은 받은 적이 없어서 어떻게 대체해야 될지를 모르겠습니다.
이 양은 불량고객과의 마찰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손님과 정의롭게 싸워 장렬하게 퇴직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무조건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일을 계속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으며 결국 자신을 희생하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감정노동은‘세계화, 노동의 유연성, 고객만족 경영’이 낳은 산물이기도

감정노동이 우리나라에게 가장 위험한 ‘질병’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3년 전 감정노동연구소를 설립한 김태흥 소장은 지난 5월 출간한 저서 「감정노동의 진실」에서 자본주의 3.0, 즉 신자유주의가 세계화, 노동의 유연성, 고객만족 경영으로 포장되어 우리나라를 지배하기 시작했다고 기술했다. 세계화와 노동 유연성은 20~30대의 취업난, 40~50대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상시 퇴출, 그리고 비정규직을 양산했으며 파견·아웃소싱·특수고용 노동자 등 고용의 형태가 다양해져 기업들마다 최저 비용으로 최고의 고객만족을 내걸어야만 하는 갑과 을의 계약관계가 등장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감정노동을 부추기는 것은 ‘고객만족 경영’이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는 기업만이 아니라 공공기관까지 고객만족도를 조사해 기관의 경영 평가에 반영하게 되었다. 김소장의 저서에 따르면 한 해 매출 1조 6천억 원을 올린 A공항은 2011년 공기업 최고 등급인 ‘우수’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직원들의 친절도는 세계적이지만 그들 중 76%가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친절이 고용의 도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김소장은 “고객만족 경영을 넘어 그들의 현실을 돌아보아야 한다. 기업이 진정으로 고객만족을 통한 성장을 원한다면 고객 접점에 있는 직원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의 사기를 올려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집단의 도덕률 그리고 서열문화가 감정노동을 키웠다

노동현장에서 대표적으로 적용되는 원리가 하나 있다. 바로 *내집단의 도덕률이다.(*내집단의 도덕률-자기가 속한 집단은 ‘내집단’, 그렇지 않은 집단은 ‘외집단’으로 구분하여 절대적으로 내집단에 이익이 되는 것을 선으로 규정하는 도덕률 「감정노동의 진실 3장」)

노동현장에서는 정규직이 아닌 외집단 사람들에게는 도덕적 잣대가 적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그대로 외집단의 감정노동 문제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서열문화다. 이는 어떻게든 이기려고 하고 밀려나면 불안과 분노의 감정이 휩싸이게 만드는 것이다. 김소장은 저서에서 “‘고객은 왕이다’라는 슬로건은 감정노동자의 심리적 서열을 노예 상태로 만들게 된다.”고 기술했다.

불량고객의 대부분이 밀려난 서열을 회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어

김 소장은 과거 26년간 광고대행사에서 일했다. 광고주를 ‘주님’이라 부르며 심각한 감정노동자로 살았다는 그는 “광고주들은 광고회사 직원들보다 월급 수준, 사회적 인정, 일의 성격 등 서열에서 밀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만회하여 상위 서열에 서기 위해 소위 ‘갑질’을 했다.”고 밝혔다. 특히 돈의 서열이 대한민국의 서열이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유럽과 미국, 그리고 한국의 중산층 기준을 제시했다.(아래표 참고)

"우리나라에서 ‘고객은 왕’이라는 말은 ‘돈이 왕’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고객은 돈을 쓰는 만큼 대우받으려, 아니 상위 서열에 서고자 하고, 기업은 기업대로 고객만족을 통해 최대한의 이익을 취하려 하는 것이다.” 물론 특정분야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지만 일리 있는 해석에 공감이 간다.

감정노동방어권과 감정노동휴식권 등 다양한 대안 제시

감정노동방어권, 이른바 불량고객과 마주쳤을 때 지속적으로 고객을 응대하지 않고 그 자리를 피할 수 있고 일방적으로 사과하지 않을 권리가 정착된다면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는 것이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로 정착될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또한 감정노동의 강도가 강한 직종의 경우 주기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정신적 배려를 받을 수 있는 감정노동휴식권을 비롯해 말단신경이완요법, 거울대화법, 천지호흡법 등 다양한 대안들을 제시했다. 그 중에서도 “이제는 기업과 사회, 국가가 나서서 감정노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그의 제안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사진> 감정노동연구소 김태흥 소장


오인옥 기자



2014/10/25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