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자 조삼주 씨 '너무 멀리보지말고, 지금 충실해야지...'
자원봉사자 조삼주 씨 '너무 멀리보지말고, 지금 충실해야지...'
  • 관리자
  • 승인 2006.07.2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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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멀리보지 말고, 지금 충실해야지,
아들을 돌보는 한, 자원봉사도 계속해야지…’


“빵보다 사람이 그리운 어르신들이 눈길로 손길로 들어왔다 가라고 이끄실 때 그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어 오히려 감사하죠.”

자원봉사자 조삼주(54세)씨는 다른 어머니보다 훨씬 부지런해야 한다. 언어·청각장애, 정신지체 등 중복장애를 가진 천사 아들(28세)을 24시간 돌보면서 사는 모자가정이기 때문이다.

결혼해서 몸 안에 생명이 생겼다는 기쁨을 누리기도 전, 열 달을 잘 견디고 태어나도 장애아로 평생 살아야할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의사로부터 들었다.

왜!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믿을수 없는 그 말을 듣고 부부가 서로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내 뱃속에 있는 살아있는 생명, 아기’라는 것만 생각하고 부부는 당시만 해도 흔했던 주변의 권고를 뿌리치고, 태어날 이 아이만을 위해서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이를 낳고 퇴원하던 날 남편은 둘째는 낳지 않겠다며 수술을 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부족함 없이 살아온 시간이었다. 아들이 13세 되던 1991년, 사랑과 아픔과 위로를 함께 나누며 힘이 되었던 남편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조삼주씨와 천사 아들이 남았다.

기자가 군포제일가정봉사원파견센터에서 조삼주씨를 만나던 날은 아들이 삼성의료원에서 수술을 하고 퇴원하는 길이었다. 의학용어로 에스상 결장 게실염을 앓고 있는 아들이 그동안 받아왔던 약물치료가 효과가 없어 삼성의료원을 통해 수술을 받은 것이다.

그동안 거르지 않고 혼자 사시는 어르신 30여분에게 빵 배달을 해왔는데, 먼 곳에서 수술한 아들을 돌보느라 봉사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센터를 방문한 것이었다.

휠체어에 앉아서 아픈 것을 참느라 땀이 송글 송글 맺혀져도 엄마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아기같이 착한 아들, 도저히 50대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외모를 가진 씩씩한 엄마 조남주씨.

그는 무슨 인터뷰냐며 한사코 거절했다. 기자가 자원봉사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망설이는 분들에게 안내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거듭 요청하자 마지못해 응했다.

조남주씨는 남편이 생계를 책임지는 전업주부가 아니다. 그가 사는 곳은 군포시 광정동 주몽아파트 영구임대 10단지이다. 그가 하는 일은 가사도우미다.

그것도 중복장애를 가진 아들을 돌봐야하기 때문에 아들이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 보호받는 시간에 일할 틈을 얻어야 한다. 그런 그가 마음과 물질, 시간을 들여 자원봉사를 한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자원봉사 할 시간을 낼 수 있어요?”

“그냥 해야죠, 감사하잖아요, 천사 아들하고 생활하면서 어려움당한 분들을 돕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센터에 그냥 찾아왔어요, 봉사하고 싶다고”

“먹고 사는 것, 장애가 있는 아들을 돌보는 것 이런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아요, 오히려 긴장하며 살게 하고, 작은 일에 감사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표현도 서툰 아들이 많이 아파할 때, 그 아픔을 대신할 수 없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래도 함께 하니까 괜찮은 거 같아요”

조삼주씨를 만나면서 ‘자원봉사자 수는 늘었지만 적재적소에 필요한 자원봉사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항간의 말을 떠올렸다.

자원봉사에 실비를 대주고, 인센티브(유인책)정책을 만들고, 봉사를 점수로 계산하고 자원봉사행정가들이 자원봉사의 첫마음을 잃고 코앞의 실적과 결과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중간 결과다.

그동안 복지와 관련된 일, 사람, 행정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5년차인 기자도 초심을 잃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자원봉사가 가능하냐?’물었던 것이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가 없이, 내 돈과 시간을 들여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자원봉사라는 걸 새삼 확인해 본다.

거동이 불편한 채로 온종일 방안에 계시는 어르신들을 찾아가는 것은 조삼주씨에게 또 다른 기쁨이다. 아주 작은 손길에도 고마워 어쩔 줄 모르시고, 빵보다 사람이 반가운 어르신들은 눈길로 손길로 더 머물다 가라고 이끄신다.

마음 같아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남아있는 어르신 댁을 다녀가려면 센터에서 귀가를 기다리는 아들을 데려오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서둘러 다음 날을 약속하고 길을 나선다.

가끔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내가 아들보다 나중에 가야 끝까지 돌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과 나 혼자 남아 저 어르신들처럼 누워있으면 어떻게 하지!”이런 생각을 해 본다.

그러다 머리를 한번 흔들고, 생각을 추스르고, 씩씩한 천사 아들의 엄마로 되돌아온다.

‘너무 멀리보지 말고, 지금 충실해야지, 아들을 돌보는 한, 어르신들을 위한 자원봉사도 계속해야지, 더 주시는 것은 나눠 가져야지….’

아들과 함께 찍는 것이 아니라면 사진촬영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조삼주씨 말대로 여러컷의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편집할 수 없었다.

아무리 꾸미려고 해도 천사 아들의 얼굴에는 수술 후의 고통과 카메라의 낯설음이 그대로 거짓 없이 나타나 있어서. 아름답고 감사한 모자가정이 시선이 모아지지 않아 왠지 서글픈 그림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자의 기술 부족이다.

순간적으로 준비 없이 찍은 조삼주씨의 사진으로 기사를 완성했다.


권연순기자 (2006.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