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어머니 생각나는 날
[발행인 칼럼] 어머니 생각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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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5.0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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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동구 밖에 서있는 애송이 감나무가 수십 년 만에 고향을 찾은 나를 반겼다. 소쿠리를 뽑아 매미 덫 만들고 산딸기 찾아 산속을 헤매던 나는 어디론가 가고 옛 산만 남아 고향을 지키고 있었다. 동리 앞 우물에 모여서 정담을 주고받던 아낙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정겹던 풍경은 이제 다 사라지고 여기저기 빈 집만 남아 있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아야 흘러 무상하노라”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고향을 잃어버린 듯 마음이 문득 허허롭다. 농촌문제가 심각하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고향에 와 보니 비로소 피부에 와 닿았다. 마을은 잠들어 있는 듯 고요하고 이따금 노인들의 모습만이 눈에 뜨일 뿐이다. 마음 탓일까, 개들조차 힘없이 느릿느릿 걷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어릴 때, 개들은 아이들의 손에 있는 고구마를 먹으려고 펄쩍펄쩍 뛰어 올랐었는데 이제는 노인들과 생활하다보니 그럴 필요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초등학교의 농촌 분교들은 점점 문을 닫는다는데 어느 날엔가 우리 고향은 그 자취마저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마을의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어머니의 둘도 없는 친구 분을 만나 뵈었다. 너무나 반가와 손목을 잡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해도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시지 못하는 눈치다. 어느새 눈이 침침해지셨는지 눈을 한참 비비시더니 그제야 알아보셨다. 역시 나만 나이를 먹어가는게 아닌가보다. 하기는 내 소꿉친구들도 어느새 느지막한 중년이 되었으니……. 내 모습은 또 어떤가! 고향에서 만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야! 많이 늙었다. 대머리가 되니 통 못 알아보겠는걸” 하지 않던가.

인생이란 무엇일까. 성경에 보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벧전1:24)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의 육체는 영원하지 않은 것을 위해 살아간다. 싸우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도적질하고, 불효하고, 배신하면서, 바쁘게 달려간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정신없이 달음질 치고 있을 뿐이다. 생각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분주하게 살다보면 이처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문득 공허하고, 그것을 욕심으로 채우려다 괴로워지고, 세상 것으로 달래 보려니 병들고……. 그래서 현대인은 점점 불행에 가까워진다.

우리들 모두 핑계에 익숙한 것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로부터 물려받은 습성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선물로 준 낙원에서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을 때 뱀 한 마리가 찾아왔다. 뱀은 하와를 설득하여 하나님의 뜻을 어기도록 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큰 죄를 짓게 하여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끊어놓았다. 그 후 그들은 자기들의 모습을 숨겼고 하나님 앞에 비밀이 생겼으며 잘못을 상대에게 미루고, 핑계를 만들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낙원을 잃어버리고 고통스럽고 유한한 삶을 살게 되었다.

우리도 여러 가지 핑계거리가 많다.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성경말씀은 뒷전에 두고 환경을 핑계 삼아 부모님을 잘 돌보아드리지 못하는 것도 그중의 하나다.
직장과 사업, 자녀, 경제적 환경 등을 내세워 부모님께 소홀해지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부모님의 권위를 세워드리고 부모님 중심으로 생활하는 가정이 자녀들에게도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고, 이전 세대의 역사성을 인정하게 한다. 분주하다고 부모를 외면한다면 언젠가 나도 나의 자식에게 같은 대접을 받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는 나도 다른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다. 어머니 생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 에는 기도의 배경이 되어주셨고, 개척 때 힘든 시기에 교회에 오셔서 고난을 함께 하셨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 수 있는 날이 곧 오리라 생각했다. 에어컨 나오는 좋은 차 타고 가보고 싶어 하셨던 고향에도 함께 가고 싶었다. “교회에 붙어있는 방이 아닌 조용한 사택이 마련되면 꼭 모실 테니 조금만 참으세요” 하는 내 말에 꼭 그러마고 기뻐하시던 우리 어머니! 내가 그 약속을 지킬 형편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세상에 계시지 않았다. 부모님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이 가슴에 사무쳤다.

‘어머니, 오셔서 평안하게 쉬실 곳 하나 마련하지 못한 저를 용서해 주세요. 하지만 어머니! 우린 예수님보다는 부자예요. 예수님은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어요. 어머니! 지난 번 제가 사다드린 성경 기억하시지요? 땅의 소망이 참 소망이 아니라는 것 어머니도 아시지요. 이젠 슬퍼하지 마세요.’

우리 어머니는 청춘에 혼자되시어 가난과 외로움을 이겨가며 자식들을 키우셨다. 주님 은혜로 구원도 받으셨고 환경에 종노릇하지 않으시고 믿음과 인내로 환경을 이긴 장한 어머니시다. 형제간에 서운한 일이 있어도 어머님이 계셔서 불화를 막아주셨고, 하나님이 연단하려 주시는 고통도 깨닫게 해 주셨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고생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안타깝고 효도를 다하지 못한 회환으로 눈물이 손등을 적신다. 자녀가 부모님께 아무리 잘 해드려도 부모의 사랑에 비하면 효도는 다함이 없음을 부모가 되니 깨달아진다. 이젠 어머니 생각이 날 때면 어머니를 찾아뵙듯 요양원에 있는 어르신들을 찾아가 문안을 드린다. 어머니! 어머니! 아무리 붙잡고 울어도 주님이 부르시면 떠나시고 말 것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영생함을 믿기에 이젠 울지 않고 찬송을 부르리라. 언젠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부끄러움 없는 모습으로 나도 어머니 가신 그 나라 찾아가야지 생각하며 어머니의 환한 웃음, 다시 떠올려본다.

<목회 속에 피어나는 복지>(쿰란출판사, 2013) 중

2016/5/4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