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통역사가 본 농아인의 세계 열일곱
수화통역사가 본 농아인의 세계 열일곱
  • 관리자
  • 승인 2016.07.1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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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 당당한 농인?
신환희
국가 공인자격 수어통역사

손녀: 할머니~~ 더워서 에어컨을 켜야 할 것 같아요. 아빠는 오늘 회식 있어서 늦게 온대요.
할머니: 응? 뭐라고?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먹겠네.
손녀: (큰 목소리로 천천히) 에어컨 더워. 아빠 회식 늦게 와요.
할머니: 응 에어컨. 아빠 회사 간다고?
손녀: (더 크게) 회식!

조부모의 노인성 난청으로 대화가 어려운 경험은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수어를 아는 나로서는 수어로 대화하면 간단할 것을 이런 상황이 여간 답답한게 아니다. 그래서 할머니나 어머니께 수어를 가르쳐 드리면 어떨까 생각하는데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서 망설이곤 한다.

왜 ‘수어’ 라고 하면 ‘언어’라는 말보다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것일까?
수어는 소리가 없는 상황에 최적화된 언어이다. 단지 영어, 프랑스어, 한국어 등 수 많은 언어중 하나일 뿐인데, 내 자식은 안 썼으면 좋겠고, 다른 청인(hearing people)이 수어를 한다면 좋은(착한) 일을 하는 것이고 천사같이 보이는 이런 묘한 특성을 가지
게 됐을까?

이 같은 수어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수어는 병원에서 청각장애인으로 진단된 내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기 전에,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하기 전에 우선하여 고려해야 할 사항에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농인(deaf)이 음성언어를 할 수 있는 것은 그 농인에게 큰 장점이 될 수 는 있다. 하지만 음성언어가 그의 제1 언어가 되기는 어렵다.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농인에게 수어는 청인이 듣고 말하는 것처럼 그저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무조건 수어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청인이 다수인 사회에서 농인이 음성언어를 할 수 있는 것은 농인과 청인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단지 생각의 틀을 조금만 바꾸자는 것이다. 제1 언어를 수어로 기반으로 하고, 필요하다면 선택 사항으로 음성언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외국에서 많이 이루어졌고 다수의 농인들이 지지하고 있다.

내 아이를 청인도 농인도 아닌 주변인으로 살게 할 것인가? 아니면 당당한 농인으로서 살게 할 것인가?


2016/7/15 Copyrightⓒ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