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한강(韓江)의 「채식주의자」
[도서] 한강(韓江)의 「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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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29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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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왜 그래가 아니라 이제 괜찮아를 돌려주고 싶다

양희철
추계예술대학교 전자정보도서관 사서

휴가철 추천도서가 쏟아지는 시즌이다. 이번 방학에는 기필코 한여름 폭풍처럼 몇 권의 책을 읽어내고 말겠다고 철석같이 다짐했건만 “날은 너무 무덥고 땀은 줄줄 나는데 비도 바람도 거의 없는 뜨거운 여름이라서”라는 핑계로 또 할 일 없이 여름이 가고 있다. 독서 계획은 이미 물 건너갔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변명거리는 남겨두자며 한강에라도 달려들고 싶은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또 다른 이름의 한강 속으로 뛰어들었다. 지난 5월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받은 최초의 한국 작가, 바로 그 한강(韓江)이다. 2007년에 발표된 「채식주의자」가 수상 직후 사흘 만에 30만부가 팔렸다고 하니 최근의 한국문학과 출판시장을 생각한다면 미 증유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펼쳐 든 「채식주의자」는 독자들의 관심을 대변하듯 ‘깊이 잠든 한국’을 가로지르는 한강처럼 시원하다 못해 매섭고도 서늘했다.

「채식주의자」는 30대 여자, 영혜와 그녀를 둘러싼 가족의 이야기다. 주인공 영혜는 남편의 고백에 의하면 눈에 띄는 점이 전혀 없는 지나치게 평범하고 무색무취인 인물이다. 그런 특징 없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악몽을 꾸었다며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냉장고에 그득했던 고기들을 모두 갖다버리고 돌연 스스로를 철저한 채식주의자로 선언한 것이다. 그날 이후 식탁에는 유제품을 비롯한 일체의 육류가 사라졌고 남편은 고기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각방 신세를 진다. 남편의 요청으로 처가 식구들이 모여 그녀를 설득해보지만 갈등은 점점 극에 달하고, 결국 다혈질인 그녀의 아버지는 식탁 앞에서 물리적인 폭력으로 육식을 강제하고 만다. 그 자리를 피할 수 없었던 영혜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고, 점차 육식뿐만 아니라 입는 것과 자는 것조차 거부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차츰 극단적인 거식증 환자로 변해간다.

「채식주의자」는 동명의 표제작을 시작으로 「몽고반점」, 「나무 불꽃」으로 이어지는 3편의 중단편을 담은 연작소설 집이다. 3편의 이야기는 각자 독립적인 소설이면서 동시에 공통적으로 주인공 영혜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폭력을 상징하는 육식주의 자와 이에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채식주의자 간의 대립을 다루는, 줄거리만 보자면 단순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독자들이 그 폭력과 저항의 주체를 어떻게 상정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서 얘깃거리가 풍부한 소설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영혜를 억압하는 가족이라는 굴레는 읽는 이에 따라 사회나 국가 또는 세계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다수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보편’과 ‘상식’이라는 관념적인 개념일 수도 있다.

또한 「채식주의자」는 서사를 이끌어 가는 관점이 특이한데, 이야기의 화자가 주인공인 영혜 자신이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는 남편과 형부와 언니의 시점이라는 것이다. 극 중에서 그녀에게 직간접적으로 무차별한 폭력을 행사하는 ‘가족’에게 영혜는 그저 그들의 욕망의 대상일 뿐이다. 「채식주의자」는 이런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주인공 영혜의 시선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는 듯하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더더욱 사랑에 대한 성찰 없이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관심 속에는 사실 상대방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 전제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혜는 이해를 구하기를 포기하고 비폭력적인 형태로 밖에 저항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영혜에게 가장 큰 폭력은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정작 그녀 자신의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건이 터질 때는, 대부분의 경우 발화하는 순간이 되기 직전까지 사소하게 지나치는 수많은 전조를 내포하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어디까지나 상황이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 러서야 그것을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타인을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단호하게 아직은 우리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경계를 넘어서진 않았을 거라고 믿고 싶다. 당신이 가족이든 친구이든 가까운 누군가이든, 내가 진심으로 가만히 당신의 이야기를 더 들어주기만 한다면. 벌써 몇 년째 당신은 이름 모를 기차역에서서 유난히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듯 나를 우두망찰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채식주의자」를 덮으며 수많은 당신들의 기다림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늦지 않게 당신에게 도착하기를, 그래서 한강의 시에 나오는 구절로 말해주고 싶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