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보았습니다]미술치료봉사자 유성자씨
[만나보았습니다]미술치료봉사자 유성자씨
  • 관리자
  • 승인 2005.08.1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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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동심 찾아 줄게요”
“어머나~ 배OO 할머니! 옥색 팔찌 하고 오셨어요?”
“임O 어르신, 꽃 분홍 티셔츠 너무 예뻐요.”


매주 금요일이면 유성자 선생님(68세)은 군포시 금정동에 위치한 주간보호센터를 찾는다.

심하진 않지만 치매가 있고, 중풍이 있는 11-12명의 어르신들이 생활하는 곳이라 제법 소란할 줄 알았는데 어르신들이 둥근 탁자에 놓인 도화지 앞에 앉아서 선생님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듣는 모습이 꼭 초등학생들처럼 순진하고 어여쁘다.

가끔씩 대소변 가리는 걸 잊어버리거나, 매일 만나는 사람에게 늘 똑같이 ‘누구시더라’이렇게 묻지만 않으면 걸음도 가만 가만 걷고, 큰소리 내는 일도 거의 없이 소근 소근 거리는 어르신들.

언뜻 보면 봉사하는 유성자님과 별 다르지 않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이제서야 미술치료봉사에 나선 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든다.

“좀더 젊었을 때 봉사할 걸 있을 때 나누어 줄 걸”. “돌아가신 어머님께도 내 잘하지 못했어요” 아쉬움이 잔뜩 묻은 사투리로 인사를 건넨다.

“나도 이렇게 나이가 들었는데 약한 어르신들을 만나면 어머니생각이 많이 나서… 살아계실 때 좀 잘할 걸, 내가 왜 그리 몰랐을까요? 참 죄송하고 아쉽고 그렇지요” 이런저런 후회스러운 마음에 눌려있다가도 앞으로 10년은 봉사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힘을 낸다.

부산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같은 미술학도인 남편을 만나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지난 시절, 공직생활만 하던 남편이 시작한 사업이 기울면서 자녀를 위한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해준 것이 늘 마음에 아픔으로 남아 있는데 다행히 자녀와 사위들이 미대강사, 기업의 연구원, 교수 등 사회의 건강한 일군으로 성장해서 자녀들이 늘 고맙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유성자님은 이런 어머니의 마음을 수업 중에 어르신들과 함께 나눈다. 어려웠던 시절의 찔레꽃 따 먹던 이야기며, 보릿고개 이야기며, 자식들 키우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예전의 기억들이 날마다 더 생각나는 어르신의 동심을 찾아주고, 마음의 문을 열어 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크레파스로 선을 긋고,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칠하고, 결 고운 한지를 찢어 붙이다 보면 어느새 두런두런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교사로 오래 재직하셨던 임O 어르신은 다시 교사가 되어 손 움직임이 더딘 어르신을 가르치시고, 각자의 세계 속에서 건네는 말 같지만 서로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편안하고 안정된 모습이다.

두 번째 수업인 뇌 활동을 위한 퍼즐 맞추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약속한 2시간이 다 지나가 버리곤 한다.

매주 어르신들과 헤어질 때쯤이면 “다음 주에는 제일 좋아하는 색으로 입술을 예쁘게 칠하고 오셔요~” 숙제를 내 준다.

오전봉사를 마치면 오후에는 산본2동에 있는 ‘행복한 홈스쿨’로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불안정한 가정생활에서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은 유성자님이 그동안 만났던 많은 사람 중 가장 힘든 대상이다.

거칠고, 때론 폭력적이기까지 한 아이, 다른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 처음엔 ‘미술수업만 하면 되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했지만 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여는 일이었다고 한다.

“다 늦어서 경험하는 세상이 이렇게 다양하고 나누고 도와야 할 일이 많을 줄 몰랐다”고 하면서 수업이 없는 날에도 그 아이들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유성자님은 오늘도 매트로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만났던 먼저 이 세상을 떠나갔던 사람들의 모습 속에, 주간보호에서 만나는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 어르신들 모습 속에, 사랑을 배워나가는 아이들 속에 있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나눔’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정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