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보았습니다]군포시자원봉사센터 이동목욕봉사자 최기영씨
[만나보았습니다]군포시자원봉사센터 이동목욕봉사자 최기영씨
  • 관리자
  • 승인 2005.09.24 16: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봉사는 생명처럼 자라는 것이구나"

‘남자인 내가 해야 될 봉사-이동목욕’


30년 공직생활의 연륜 보다는 청장년처럼 건강하고 적극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최기형(57세)씨를 군포시자원봉사센터에서 만났다.

휴무인 토요일에도 센터안에서는 청소년 자원봉사활동과 이동목욕봉사 진행을 위해 임정호 복지사와 몇분의 직원들이 일정을 확인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10여년전 거리에서 우연히 여성들이 이동목욕봉사를 나가기 위해 필요한 기구들을 직접 나르는 것을 본 후 ‘남자들의 힘이 꼭 필요한, 언젠가는 내가 해야 될 봉사’라는 생각에 늘 마음이 빚을 지고 살아왔는데 퇴직 후 개인사업을 하면서 스스로 자원봉사센터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평일에는 양어사업장이 있는 서산에서 주로 생활하다가 금요일 저녁이면 토요일 목욕봉사가 기다려져 ‘그 젊은 친구 내가 목욕해 주면 마음 상해하지는 않겠지?’ ‘그 어르신은 더 약해지셨을까?’올라오는 시간 내내 봉사가 필요한 이웃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이 꽉 차 오른다.

공직생활에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세상살이 속에서 새롭게 시작했던 일을 접어야 할 때도 있었고, 정직과 소신이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건강과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시간이 지날수록‘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돕고 있는 것’이라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살아갈 용기’를 일깨워주는 이웃들이 그에게는 건강한 생활을 만들어주는 의사가 되었다.

목욕봉사를 하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 중에‘이제는 더 어려운 사람에게 봉사해 달라’며 목욕서비스를 마다하는 13단지에 사는 장애우를 떠올려본다. 몇 년 전에 사고로 식물인간처럼 누워서 꼼짝 못한 채 목욕봉사를 받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스쿠터를 타고 다니면서 힘써서 일을 하고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음식을 나눠주는 푸드뱅크 봉사를 하고 있는 참 고마운 사람이다.

누가보아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향해 봉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봉사는 생명처럼 자라는 것이구나’는 생각이 든다.

군포시 자원봉사센터에서는 2003년부터 중증의 장애가 있거나 노인성 치매 등으로 장기간 누워서 생활하거나 대중목욕탕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목욕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이동목욕 차량으로 목욕서비스, 간호, 기타 재가복지서비스를 해 왔다. 일일 2~3가정을 찾아가고 봉사에 안양교도소 경비교도대외 11개 단체 13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동목욕은 단순히 목욕을 통해 환자를 청결하게 해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서비스이다. 움직일 수 없는 분들은 외롭고 쓸쓸했던 마음을 위로받는 시간이고, 중증 환자들을 간병하느라 지쳐있는 가족들에게는 이웃들의 관심을 통해 간병에 대한 힘을 다시 얻는다.

최기형씨 가족은 부인 이계순씨를 비롯해 딸, 사위가 모두 교사다. 중대 사회개발대학원에서 지역사회개발을 전공한 최기형씨. 지역사회를 위해서 하고 싶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져 간다.

목욕봉사를 위해 찾아갈 때마다 몇 번이고 “미안해서, 대충하지 그려, 얼마나 살겠어?”하셨던 김○○ 어르신, 부득이 사업상 중요한 일이 목욕 봉사하는 날과 겹쳐서 고민 끝에 목욕해드리는 것을 우선했는데

그날 목욕이 이 세상을 떠날 마지막 몸단장이 되었던 금정동의 서○○ 어르신, 두 어르신 댁은 다시는 찾아갈 수 없게 되었다.

당시를 생각할 때마다 봉사를 미루었더라면 얼마나 후회가 되었을까. 아찔하다.‘기다리고 싶어도 기다릴 수 없는 것이 어르신’이란 말이 실감이 난다.

젊은 청년을 목욕시킬 때는 그가 마음 상해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대한다.

도움이 필요한 새로운 이웃을 만날 때마다 최기형씨는 불편한 몸이지만 희망을 놓지 말기를,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 새로운 세계를 향한 출발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오늘도 동료들과 함께 이동 목욕차에 몸을 싣고 이웃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그 곳으로 달려간다.


권연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