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선교발레단장 김수미씨
샬롬선교발레단장 김수미씨
  • 관리자
  • 승인 2006.08.1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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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발끝으로 감동의 춤을 추는 사람


청소년복지학교 희망특강 강사로 나선 김수미 단장은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은 꿈속의 요정 같은 발레리나가 아니었다.

주저하지 않고 씩씩하게 휠체어를 밀며 강의실 앞으로 들어서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청소년들을 향해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발레를 하던 사람이구요, 지금은 발레를 가르치는 사람인데요. 믿어지나요?”라고 먼저 말을 건넸다.

학생들은 잠시 웅성거렸다. “여러분들보다는 제가 나이가 많지만, 그냥 낙심하고 살기에는 너무 젊죠? 예쁘죠? 숙녀나이는 비밀인데, 제가 스물두 살에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으니까, 벌써 10년이 넘었네요!”“이곳에 모인 분들 중에 휠체어를 탄 사람은 저 혼자이니까, 저보다 여러분들이 더 감사할 것이 많겠네요! 그렇죠?”

김수미 단장은 중학교 1학년 때 현대무용을 전공한 체육교사가 부임해 오면서 발레를 접하고는 무용반에 들어가 발레에 빠졌다. 발레는 그의 인생의 전부였고, 토슈즈를 신고 발톱이 빠졌다가 다시 나기를 여러 번,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레슨비를 감당할 수 없어 예고 대신 인문계 고교를 진학했지만 가족이 잠든 새벽녘이면 거실에서 발레를 연습했다. 보다 못한 그의 아버지가 발레 개인 레슨을 위해 은행 대출을 받았고, 안산에서 서울로 레슨을 받으며 발레리나의 꿈을 키우면서 유학을 준비했다.

꽃다운 나이 스물둘, 발레학원 강사로 활동하던 1993년 11월 토요일 오후, 연습실 청소를 하다 4층에서 아래로 떨어진 그는 가게 간판에 허리를 부딪친 뒤 주차된 승합차 앞 유리에 이마를 찧고 땅에 쓰러져 병원 중환자실에서 깨어났다. 수술이 끝나고 한 달 후 가족으로부터 자신이 평생 하반신 불구라는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믿기조차 어려웠지만 오래 낙심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유일한 감동이자 위로가 되었던 성경을 읽고 또 읽으면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나중으로 미루고 두 다리를 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연주, 그림 그리기, 십자수 등 그러다 필리핀에서 1년간 선교사 훈련을 받고‘발레를 통한 선교’비전을 갖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고를 당한 지 3년만인 96년 11월, 모집광고를 냈고, 찾아온 8명의 아이들과 함께 집 거실에서 발레연습을 시작해 상가 건물에 연습실을 마련했다. 온 가족이 힘을 합해 바닥을 깔고, 페인트칠을 하고, 어머니는 웨딩드레스를 만들던 솜씨로 아이들의 발레복을 제작했다.

무료로 발레를 가르쳐 준다기에 찾아왔다가 장애인 인줄 알고 돌아가는 부모들도 있었지만 단원들은 꾸준히 늘어나 초청 공연, 정기공연, 안산에 이어 2001년 3월에는 샬롬발레단 제주지부가 만들어졌다.

“선교단의 첫 제자들은 아주 혹독하게 가르쳤어요. 어설프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 아이들이 벌써 고3이 되고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선생님이 너무 무서웠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엉성하게 하면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아 동작이 나올 때까지 눈물로 가르쳤어요.”

그는 어린아이들을 이렇게 가르친다. “손에 뭘 쥐라고 했지? 달걀이야, 달걀이 떨어지지 않게… 목은 기린처럼 쭉 빼고! 발은 엄마 뾰족구두 신은 것처럼 예쁘게! 알겠니?”

씩씩한 목소리로 스스로 알아서 자세를 잡을 수 있게 물건을 이용해 상상하도록 한다. 휠체어에 앉은 김수미 단장만의 교수법이다.

2005년도에 있었던 대만공연도 관객들뿐만 아니라 공연자 모두가 아름다운 감동을 공유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김수미 단장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꿈나무 발레리나·발레리노들과 함께 2008년 러시아공연과 지부창단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더 나아가 세계 속에 10개의 지부 설립과 선교센터건립을 꿈꾸고 있다.

“러시아지부가 창단되면 그곳으로 유학 가는 아이들도 돌봐주고 싶어요. 국내 선교단은 성장한 제자들에게 맡기려고 해요, 고맙게도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값없이 가르침을 받았으니 자기들도 당연히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부하는 중에도 시간을 쪼개서 봉사하러 오는 아이들도 있고, 해외 지부를 맡겠다는 아이들도 있어요, 큰 보람이지요.”

그와 마주하고 있으면 그가 하반신마비라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안든다. 지역의 발레문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제자들의 진로와 선교의 큰 비전에 그가 가진 장애는 그만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보통 일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이 있지요, 그런데 그건 어려움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또 이겨 낼만 하니까 괜찮아요!”

샬롬선교발레단의 공연에는 기교 이상의 감동이 있다. 무대연출자도 무대 뒤에서 단원들이 온몸으로 공연하는 모습에 감동을 하고, 아이들은 공연하는 과정 속에서 감사를 배운다.

무대의상 속에는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기대와 꿈이 담겨 있다. 김수미 단장은 그가 믿고 있는 예술의 힘, 기도의 힘, 사랑의 힘으로 세계를 향해 선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권연순기자 (2006.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