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의 답은 ‘나’와 ‘너’
학교 폭력의 답은 ‘나’와 ‘너’
  • 관리자
  • 승인 2006.09.0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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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과거의 어느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학창시절’을 꼽지 않을까 싶다. 필자에게도 ‘학교’하면 떠오르는 추억들이 많다.

친구들과의 정다웠던 추억들. 선생님들과의 얽힌 재미난 일화들. 그런 학창시절이 기억하기 싫은 기억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따돌림이 우리들에게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어울리기 좋고 편한 친구가 있듯, 싫은 친구나 어울리기 싫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일들은 현재 세대뿐만 아니라 이전 세대에도 어느 정도는 있어왔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의 십대들이 경험하고 있는 따돌림의 문제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성장과정의 한 통과의례’로만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의 문제는 아니다. 따돌림의 정도와 양상이 한 개인을 망가뜨릴 수 있는 ‘무자비한 폭력’의 수준까지 이미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폭력의 실체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원장이었던 강지원 변호사의 책 ‘나쁜 아이는 없다’에서 말하기를 검찰이 1997년 9월부터 시작한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에 걸려온 신고전화 1,113통을 분석해 내린 결과는 우리나라 학교폭력의 정도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데, 검찰의 분석에 따르면 학교폭력이 일어나는 장소는 교내 화장실이나 창고 등 교사들의 통제가 잘 미치지 않는 곳이 65.1%나 됐고, 등하교길(16.7%)과 집 근처(5.3%)는 오히려 나은 편이었다.

또한 학교폭력의 65.6%는 가해자가 2명 이상인 집단폭행이었고, 6명 이상이 가담한 집단폭행 사건도 26.9%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행횟수도 1회에 그치는 경우는 42.6%에 불과했고, 2회 이상의 상습폭행이 57.4%를 차지했다. 특히 상습폭행의 73.6%는 금품갈취를 목적으로 저질러졌다.

경찰이 1997년 1월부터 6월말까지 학교폭력과 관련해 검거한 청소년의 숫자는 25,367명이다. 이중 6,162명이 구속됐다. 검거된 학생들 중 913명은 조직적으로 폭력서클을 결성해 활동한 학생들로, 106개 327명에 이르렀다.

이처럼 폭력 학생들에 의한 집단구타, 금품갈취, 감금 협박 등 ‘학교폭력’이 교내외에 일상화되면서, 이를 견디다 못한 학생들이 자살을 하거나 가출이나 자퇴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신경쇠약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한다.

1998년도 상반기 중에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 접수된 전화상담 요청 자는 342명, 이 가운데 집단 따돌림에 관한 상담을 요청한 학생은 148명(43.3%)으로 나타나 왕따로 인한 피해가 심각함을 보여주었다.

학교폭력의 원인은 개인적, 가정적, 사회적 요인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에 학교를 중심으로 관련된 체계 간에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학교에서의 개입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학교를 중심으로 한 총체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폭력예방과 대처방법 제안
첫째, 개인적인 수준에서 위기를 당한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해학생 또는 주변인들 각 개인을 대상으로 개별상담과 집단 상담을 병행 실시함으로써 그들의 심리·정서적 지지 및 피해에 대한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정서적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개입한다. 그리고 필요할 때에는 외부자원과 연결시켜 주기도 하며 이를 의뢰하기도 해야 한다.

둘째, 학교수준에서는 학급상호작용강화프로그램, 학급별 학교폭력예방프로그램, 또래상담활동 등 학급 구성원 간에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없애고 원활한 관계형성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학교폭력대책전문가와 학교의 즉각 협력뿐만 아니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소집하여 범 학교 차원에서의 위기개입 체계를 형성해야 한다.

셋째, 지역사회 차원에서는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역사회 지원체계를 형성해 학교에서 발생하는 위기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지역사회내의 다양한 자원들과 인력들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후처리가 아닌 예방이 우선되어야 한다. 예방을 위해서는 정신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학생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어떻게 어울려 살아야 하는지 사람의 사람다움을 키우는 작업이 사후처리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먼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Understand(이해)는 말 그대로 ‘아래에 선다’는 것이다. 절대 자기비하의 표현이 아니다. 겸허한 모습으로서의 태도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태도이다.

그다음 관계의 개선이 필요하다. 친구들은 경쟁자가 아니요, 동반자이다. 나와 공존하며 사랑해야할 이들인 것이다. 그 친구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곧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면 관계는 개선된다.

그리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나의 작은 배려가 내가 속한 공동체 속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배려는 곧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느니라”


글_한영수/ 사랑을더하는교회 담임목사, 십대예수교육선교회 대표, 성화대학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