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코와 공동체>
<그물코와 공동체>
  • 관리자
  • 승인 2006.09.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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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박상은 원장
(샘안양병원장, 생명윤리학회 부회장,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위원, 한국누가회 이사장, 회장 역임)


법조비리문제로 온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지막 보루인 판사마저 돈에 매수되어 강자의 손을 들어준다면 이 사회는 더 이상 약자가 생존할 수 없는 동물적 사회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얼마 전 일어났던 프로야구선수와 연예인들의 병역비리파문은 우리 사회를 또 한 번 흔들어 놓았습니다. 돈으로 못할 것이 없다지만 멀쩡한 사람을 중한 환자로 만들어 병역까지 면제받을 수 있다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더욱 섬뜩한 것은 소변에 농축액을 부어 넣는 정도를 넘어 방광에 도관을 삽입해 피와 단백질을 넣어 혈뇨와 단백뇨를 만들어 징병검사관의 눈을 속였다니 브로커의 면밀함과 의학적 수준이 가히 프로급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신장질환이 바로 사구체 신염입니다. 사구체(絲球 )라는 말은 실이 공처럼 뭉쳐있다는 뜻으로 모세혈관이 둥글게 모여 공처럼 보이기에 사용되는 의학용어입니다.

사구체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의 벽은 마치 그물막처럼 되어 있어 이 작은 구멍을 통해 찌꺼기와 수분은 빠져 나오지만 우리 몸에 필요한 알부민 같은 단백질과 적혈구는 빠져나가지 못하게 세밀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물막에 염증이 생기면 그물이 헐거워져 구멍이 커지게 되어 분자량이 큰 단백질과 적혈구도 소변으로 빠져나가게 되는 신장질환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흔히 간단한 소변검사에서 혈뇨와 단백뇨가 나오면 사구체질환을 의심하지만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콩팥 조직검사를 하여야 하며, 한 번 진단되고 나면 상당수에서는 만성으로 진행하여 일부에서는 만성신부전으로 투석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번에 관련된 신장환자를 진료한 신장내과의사들은 지금쯤은 혈액투석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멀쩡히 프로야구선수로 활약하고 연예계에서 인기를 누리는 모습을 보며 의아해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의 범죄수준은 우리의 상식과 상상을 초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인 셈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동체의 회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서로 얽혀있는 그물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물이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서로가 서로를 당겨주어야 하며, 한 번의 매듭을 통해 서로를 이어주어야 한다. 그물의 수많은 매듭을 그물코라고 부릅니다.

그물은 연약한 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그물코를 통해 서로를 강하게 붙들어주어 견고한 그물이 되는 것이죠.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손을 벌려 이웃의 손을 단단히 붙잡을 때, 우리 안에 있는 연약한 자들도 함께 큰 그물의 일원이 되어 우리 사회의 버팀목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을 섬기며 봉사하는 자들이야말로 그물코의 역할을 감당해 내고 있는 셈입니다. 필자가 돕고 있는 안양의 아름다운 가게 이름이 경기그물코센터인데 이곳에서 이름 없이 자원해서 봉사하시는 활동천사야말로 이 사회를 지탱하는 그물코들인 셈입니다.

그물코 역할을 해야 할 사회의 리더들이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 급급할 때, 우리 사회의 그물은 어느새 헐거워져 귀중한 자원들이 빠져나가는 위기의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에 공동체정신의 함양이 그 무엇보다 필요한 시대입니다.

사구체가 제대로 그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 지혜를 모으고 섬김과 나눔의 삶을 실천하였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