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화해를 통한 힐다잉으로
용서와 화해를 통한 힐다잉으로
  • 경기복지뉴스
  • 승인 2018.08.1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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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옛날 어르신들은 외도가 많았었다. 오죽하면 YWCA를 중심으로 축첩제도 폐지운동이 벌어졌을까? 집밖을 맴돌던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선다. 무슨 체면인지 친구 만나 해장술 먹겠다고 옷가지들 벗어두고 또 다시 사립문을 나선다. 우리 어머니들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속상한 마음을 거둘 길 없었던 어머니들은 옷가지들을 들고 냇가로 나간다. 냇물에다 옷가지들을 집어 던지며 한숨짓는다.

“이 인간아 언제 정신 차릴래?”

그러면서 휘휘 젖는다. 그리고 건져 올린다. 분하고 억울한 심정을 방망이에다 담아낸다. 방망이질 한다. 그 소리를 들은 동네 아낙네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각자의 억울함과 서러움을 이고 빨래터로 나온다. 절대 홀로 두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두들겨 팼다. 이게 난타공연의 원조가 되었다. 모든 스트레스가 다 날아났다. 우울증이 치료되었다. 빨래터는 일종의 치유의 공간이었다. 뮤지컬 <빨래>가 있다.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노래가 흘러넘친다. 그 노랫말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얼룩같은 슬픔일랑 빨아서 헹궈버리자

먼지같은 걱정일랑 털어서 날려버리자“

하지만 살만 한 세상이 되면서 세탁기가 안방 가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여성들의 항 우울제 복용이 늘기 시작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동네 상(喪)이 난다. 사람들은 버선발로 쫒아간다. 서럽게 서럽게 운다. 그리고 묻는다. “야, 야~ 누구 죽었냐?” 이런 것을 놓고 감정이 앞서는 민족이라고 해석한다. 틀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슬픔이 치유되어야 남의 아픔이 보이는 법이다. 시집살이 서럽고 서러워 울었다가는 시어머니한테 혼이 났다. 그 설움을 꼭꼭 눌러 참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놓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동네 상(喪)과 곡(哭)은 힐링 캠프였던 셈이다.

실제로 상과 함께 소를 잡거나 돼지를 잡았다. 지나가는 객도 들러 배를 채우게 했다. 동네 개들도 좋아 껑충껑충 뛰었다. 마을 사람들은 덕담으로 서로의 어깨를 토닥였다. 밤새 화투 놀이를 하며 그간의 응어리를 풀어냈다. 싸우던 사람들도 장례를 통해 화해의 자리로 나아갔다. 죽음교육이 저절로 행해졌다. 장례식장에서 읊어지는 만사(輓詞,-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글)을 들으며 옷깃을 여미었다. 상여가 동네 마을 어귀를 돌아 나갈 때 까지 불려지는 노랫가락에서 희망을 보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웰다잉(Well-dying)이 아닌 힐다잉(Healing+dying)을 살아냈던 셈이다.

한 보도에 의하면 부의함(賻儀函)이 가족중심이 아닌 개인의 것으로 바뀌었다 한다. 형제들 간의 부의 때문에 다투는 일이 잦아진 탓이다. 세간의 죽음을 보면서 드는 안타까운 생각이 하나 있다.

힐다잉을 살아낼 수 없을까?

‘용서와 화해’란 단어가 가을하늘의 잠자리처럼 머리 위를 날고 있다.